조용히 전해오는, 도시인의 자화상

입력 : 2008.03.19 09:35

연극 '서울노트'

가까운 미래,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 박물관에 소장 중이던 명작들이 위험을 피해 서울의 미술관으로 옮겨진다. 사람들은 17세기에 활동한 유명 화가인 베르메르, 렘브란트의 진품을 관람하기 위해 갤러리로 모여들고, 로비를 비롯해 휴게실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갖가지 대화들이 공간을 채우지만, 그럴수록 영혼들은 공허한 속살을 드러낼 뿐이다. 가득하지만 비어있고, 시끄럽지만 조용한, 역설의 미학. '서울노트'이다.


1994, 2003……Again 2008


인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여 ‘조용한 연극’이란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일본의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1994년 탄생한 연극 '도쿄노트'는 그가 존경하는 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 '도쿄이야기'(1953)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이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난 2003년, 박광정에 의해 '서울노트'라는 제목으로 번안되면서부터. 이후 2004년엔 서울, 이듬해엔 도쿄에서 차례로 양국 배우들의 합동공연이 올라갔다. 서울과 도쿄, 고도로 발달된 도시 속에 매몰된 가난하고 유약한 영혼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얼굴이기에 그토록 먹먹해지는 까닭이다.


적나라한 일상, 조용한 파장


'도쿄노트'는 ‘가족을 잇는, 혹은 멀어지게 하는 거리와 시간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상기키는 작품이다. 광의적 의미에서는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다. 일상의 일부를 무심히 잘라 놓은 것 같은 하루. 1년 만에 만난 가족들을 중심으로, 미술관 로비에는 큐레이터, 전쟁을 반대하는 남자, 논문준비를 위해 작품을 찾은 학생, 선본지 1주일 된 남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언어를 늘어놓지만, 이는 빈약한 울림에 불과하다. 따뜻하지만 쓸쓸한 도시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용한 연극. '서울노트'는 현대인의 감성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