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달린 '지하철 1호선'… 변화한 서울만큼 바뀌어야"

입력 : 2008.03.12 23:39   |   수정 : 2008.03.13 07:04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
숭례문 화재 보고 버전업 결심
"설정만 남기고 내용 다 바꿔"

'지하철 1호선' 연출가 김민기 /조선일보DB
1994년부터 달리며 최장기 공연 기록(3724회)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김민기 번안·연출)이 오는 12월 4000회를 끝으로 운행을 멈춘다. 21세기 바뀐 서울 풍경을 담기 위한 공연 종료다.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는 12일 "숭례문이 불타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고 버전업을 결심했다"며 "내년 하반기까지 기존의 이야기와 인물, 음악을 버린 새로운 '지하철 1호선'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숭례문 화재와 '지하철 1호선'이 무슨 관계가 있나?

"한국에서 1990년대는 군사정권이 민간정권으로 바뀌고 IMF 경제위기가 닥친 사회 변동의 중요한 시기다. '지하철 1호선'을 1998년 11월 서울의 상황으로 고정시키고 그 시절의 초상화로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10년간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고 그 상징이 '더 이상 없는 숭례문'이다. 이제 새 부대에 새 재료를 담고 싶다."

―관객으로부터의 피드백도 있었을 텐데.

"사실 20대 관객은 설정이나 대사 내용을 전혀 못 알아듣는다. '지하철 1호선'을 본 관객들의 아이디어를 올 연말까지 모아 새 버전의 재료로 삼을 계획이다. 나 혼자 뒤집는 건 나한테 발목 잡힐까봐 안 한다."
―100% 다 버리는 것인가?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공간, 이방인의 눈으로 보는 서울이라는 설정만 남긴다. 어떻게 속을 채울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절망은 무엇이고 희망은 무엇이냐'는 시각은 들어 있을 것이다."

―지금 심정이 궁금하다. 20세기 버전은 영원히 봉인되나?

"(웃으며) 시원섭섭하다. 난 만날 절망 속에 산다. 그렇게 살아야 희망도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과거형의 '지하철 1호선'은 가끔 올려 추억할 기회를 만들 생각이다."
오는 12월 4000회 공연으로 마침표를 찍는 뮤지컬‘지하철 1호선’20세기 버전. 그동안 68만명이 본 흥행작이다. /학전 제공
오는 12월 4000회 공연으로 마침표를 찍는 뮤지컬‘지하철 1호선’20세기 버전. 그동안 68만명이 본 흥행작이다. /학전 제공
―관객이 소재를 제공하면 공동창작이 되는 것인지.

"난 '창작'이라는 낱말을 믿지 않는다. 70년대 말 벼농사 지을 때는 내가 지은 쌀을 내 입에 넣는 게 창작이고 생산이었다. 그런데 한 삽 흙을 떠 물꼬 트고 물을 빼면서 회의가 들었다. 농사는 햇볕, 물, 미생물이 하는 것이었다. 음체계도 한 옥타브는 반음까지 12개고 그 조합이 음악이니, 대단한 게 아니다."

―조승우 황정민 설경구 등 '지하철 1호선'이 배출한 배우도 많다.

"어느 날 TV나 영화 포스터 보다가 '어, 이 사람 여기도 나오네' 할 때 많다. 11월부터 마지막 공연까지는 역대 배우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최근 '고추장 떡볶기'를 비롯해 아동극을 많이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도 절망이 있고 삶이 있다. 그런데 아동문학은 판타지를 줄 뿐 리얼리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저항이다."

▶'지하철 1호선'은 대학로 학전 그린에서 12월까지 공연. (02)763-8233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는 12월 4000회 공연으로 끝나는 20세기 버전이다.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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