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음악도, 가족도, 사랑도… 내 삶의 키워드는 공감"

입력 : 2008.03.07 14:19   |   수정 : 2008.03.09 01:42

'입양아 2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연주자가 음악만 들으면 한계… 시간날 때마다 그림 보러 다니죠
누구나 힘든 순간 겪잖아요 내 음악이 힘이 될 수 있었으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0)이 덕수궁에 떴다. 몸에 착 붙는 재킷부터 에나멜 구두까지 블랙으로 멋을 낸 이 청년, 맵시가 전문 모델 못지않다. 체크무늬 머플러는 '포인트'로 길게 늘어뜨렸다. "스타일 좋다"고 인사했더니 그가 서툰 한국말로 답한다. "캄사합니다. 신경 많이 썼어요." 씩 웃을 때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오닐이 자신의 음악과 인생을 담은 에세이 '공감'을 펴냈다. 11일에는 런던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을 협연한다. 발매하는 음반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찌감치 연주회 티켓이 매진되는 '파워 뮤지션'. 비올리스트로서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확보한 연주자다. 사람들은 그의 무엇에 열광하는 걸까.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즐겨 찾는다는 코스를 따라다니며 해답을 찾아봤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종로구 피맛골의 단골 빈대떡집까지 오닐과 함께 걷고 먹고 마시며 나눈 대화를 7가지 코드로 요약했다.

"어머, 용재 오닐 아니에요? 비올라, 비올라!"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던 중,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덥석 잡았다. "인간극장에서 봤다"며 사인을 청한 아저씨도 있었다. 새삼 오닐의 인기를 실감한 순간.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반겨주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입양아 2세' 혹은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오닐 앞에 늘 붙는 수식어들이다. 2004년 KBS '인간극장'에 가족사가 공개되면서, 그의 음악보다 삶이 먼저 조명받았다.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오닐의 어머니는 6·25 전쟁 당시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이복순씨. 어릴 적 앓았던 열병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이 됐고 미혼모로 오닐을 낳았다. 장애인 어머니 대신 TV 수리점을 운영하던 조부모가 그를 키웠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음악가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내게 음악가란 할리우드 스타보다 빛나는 존재였으니까."

주말 한낮. 인파로 둘러싸인 덕수궁 돌담길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덥석 잡자, 그가 "감사하다"며 웃었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주말 한낮. 인파로 둘러싸인 덕수궁 돌담길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덥석 잡자, 그가 "감사하다"며 웃었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어머니의 가족을 찾는다는 방송이 나간 직후, 그는 "하루 2000통의 이메일이 쏟아졌다"고 했다. 2명이던 팬클럽 회원 수는 3000명으로 늘었다. "내 음악을 암 투병하는 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메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누구나 아프고 힘든 순간을 겪잖아요. 사람들이 내 음악을 통해 상처를 공감하고,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난데없이 드라마 '대장금' 대사를 읊었다. "제 입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한 것인데 왜 홍시냐고 하시면…" 꼬마 장금이의 명대사를 보고 '이거다' 싶었단다. 그에게 클래식 음악은 홍시 맛처럼 자연스러운 것.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작은 마을 '세큄(Sequim)'의 오두막집에서, 어린 오닐의 친구는 음악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던 할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늘 레코드 판이 쌓여있었어요.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바흐를 흥얼거렸고,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틀어놓고 춤을 췄죠."

그가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을 권유했다. "워낙 시골이라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쉽지 않았어요. 차를 타고 왕복 4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10년 동안 불평 한번 없이 손수 운전해 데려다 줬습니다."

비올라는 우연히 다가왔다. "열세 살 때였나. 음악 축제 오디션에 늦었어요. 바이올린 주자는 마감됐는데, 비올라 자리는 남았다고 하더군요. 엉겁결에 연주해봤는데, 어깨에 올리는 순간 몸에 딱 맞고 편안했어요." 바이올린보다 약간 크고, 첼로보다 작은 악기. 현을 퉁겨보니 따뜻하고 깊은 소리가 귀에 감겼다. 그는 주저 없이 비올라를 선택했다.

"비올라의 매력은 '슈베르트 현악5중주 C장조'에서 느낄 수 있어요.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2대로 편성된 곡이죠. 높은 음역의 바이올린과 낮은 음역의 첼로가 강하게 부딪치는 사이에 비올라가 이 둘을 결합시키는 역할을 해요." 앞에 나서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두 악기를 끌어당기고 구슬려서 조화를 이루는 게 바로 비올라"라고 했다.

"세계 어디에도 비올라가 대중화된 나라는 없어요.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자적 위치랄까. 입지도 애매하고, 독주곡도 많지 않죠. '비올라를 한번도 못 봤는데, 용재씨 보러 음악회 간다'는 메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남대문은 어떻게 된 거예요?"

광화문 근처 피맛골의 한 빈대떡집에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불에 탄 남대문 사진을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남대문을 봤어요. 우리 엄마 한복도 남대문시장에서 샀는데…. 너무 슬퍼요."

스무 살 되기까지 그는 '어머니의 나라'를 몰랐다. 할머니가 김치를 담가주긴 했지만, 한국말은 한 마디도 못했다. '용재'라는 한국 이름은 2001년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에서 만난 강효 교수가 붙여줬다. '용기와 재능'이라는 뜻이다. 지금 그는, 뒤늦게 접한 한국과 한국 문화에 빠져있다.

"뉴욕에서 한국어 개인 교습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연주가 많아서 못 해요. 한국말 잘하고 싶어요. 된장찌개, 김치찌개 다 좋아해요." 그러더니 한국말로 "빈대떡, 정말 맛있어요!" 한다. 젓가락 놀림도 익숙해 보였다.

"2년 전에 친구들이랑 왔다가 단골 됐어요. 피자보다 맛있고, 건강식이에요. 술은 잘 못 마셔요. 소주는 너무 독하고 맥주만 조금 마셔요."


아픈 가족사로 주목받았다고 해서 그의 음악을 폄하하면 오산이다. 독주 악기로서 비올라의 위상을 끌어올린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실력이니까.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줄리아드 음대의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에 입학했고, 2006년 미국 클래식계 최고 권위의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받았다. 2집 앨범 '눈물'이 국내 클래식 음반 판매 1위를 기록했고, 3집 '겨울 여행'은 발매 1주일 만에 7000여 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베스트 셀러가 됐다. 지난해 1월부터는 UCLA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닐은 반듯한 보잉(활 연주법)과 차진 톤으로 감성을 두드리는 연주를 한다. 애절하지만 끓지 않고, 풍부하되 넘치지 않는다. 그는 "손의 근육이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연습한다"며 "늘 연주하던 곡도 할 때마다 활의 움직임이 다르고 현 하나하나가 새롭게 반응한다"고 했다. 발매하는 음반마다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런 노력에 있었다.

11일 런던필과 협연하는 월튼 협주곡은 그에게 특별하다. "15년 동안 연주했으니 일생의 절반을 함께해온 곡"이라고 했다. "까다롭고 기교가 많이 필요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돼요. 이 곡은 인생을 비유하는 것 같아요. 한번에 확 종결되지 않고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끝나죠. 삶이 그렇잖아요. 확실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질문의 연속이죠."

올해 나이 서른. 오닐은 "듣기 편한 음악만 연주하기보다는 현대음악 레퍼토리도 넓히고,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Ditto. 이번에 발간한 에세이 제목이다. 지난해 그가 주축이 돼 결성한 클래식 앙상블 이름도 '디토(ditto)'다.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가볍고 유쾌한 음악 양식)'의 줄임말이면서 '공감'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피아노 이윤수, 바이올린 자니 리, 첼로 패트릭 지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앙상블. 올해 6월에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동혁씨는 대단한 연주자예요. 자기 색깔도 강하고. 처음 만난 날, 압구정동에서 같이 쇼핑을 했었는데 슬림한 검은색 벨벳 재킷을 고르는 걸 보고 '나만큼 스타일이 좋구나' 생각했죠.(웃음)"

"두 분을 다 꽃미남 연주자라고 하던데" 했더니 껄껄 웃는다. "동혁씨는 꽃미남이고, 나는 아저씨죠, 아저씨!" 그는 "동혁씨도 그렇고 디토 멤버들과 함께 있다보면 젊은 에너지를 받는다"며 "서로 소리를 주고받는 실내악 연주는 유쾌한 작업"이라고 했다.

비올라를 하지 않을 땐, 주로 그림을 보러 다닌다. "미술관에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처음 봤을 때, 한 시간 동안 멍하게 바라봤어요. 고흐가 펼쳐놓은 밤이 내 마음속에 그대로 펼쳐졌죠.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 선율이 떠올랐어요."

그의 휴대전화 안에는 전시회장을 돌며 찍어온 그림 사진들이 빼곡히 담겨있다. 그는 "연주자가 음악만 들으면 한계가 있다"며 "모네, 마네, 피카소, 마티스 등의 그림을 보러 다니고, 비행기 안에서 DVD로 영화를 보며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달리기와 수영으로 몸을 만드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간극장' 이후 어머니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에서 가족을 찾지는 못했지만, 오리건주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친구도 많이 생겼고 성격도 더 밝아졌어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그는 "어머니는 장애가 있지만 맑고 순수한 분"이라며 "스스로 피아노 치는 법을 터득했을 정도로 음악성도 뛰어났다"고 했다.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음…" 한참 고민하던 그는 "영원한 동반자, 한결같은 후원자"라고 답했다. "이제 새 가족을 만나야죠" 했더니, "두려운 일"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날 돌봐준 것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데, 연주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내 아이들을 보모한테 맡기며 키우고 싶진 않거든요. 그래서 아직은 결혼 생각하기 어려워요."

그는 "배우 이영애를 좋아한다"며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을 때 '이영애씨 꼭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다"고 했다. "이상형이요? 춥다, 배고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 느낌이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죠." 

서울 종로구 피맛골 빈대떡집에서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만났다. 용재 오닐은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내한했다. /유다혜 기자 youda60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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