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신년 음악회 꼭 제철에 들으세요"

입력 : 2008.03.06 00:14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 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온기가 있을 때 들어야 제멋이 살아나는 음악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 '계절 상품'은 신년 음악회와 송년 음악회입니다. 유럽 정상을 지키고 있는 두 악단인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도이치그라모폰)와 베를린 필하모닉 송년 음악회(EMI)의 영상과 음반이 최근 동시에 국내 소개됐습니다.

세계에서 표 구하기 가장 힘든 음악회 가운데 하나가 매년 정초에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입니다. 올해는 프랑스 출신의 명 지휘자 조르주 프레트르(84)를 지휘대에 모셨습니다. 프레트르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후반부 녹음에 함께했던 '오페라 명장'입니다.

프레트르는 프랑스 지휘자 가운데 처음으로 빈 필의 신년 음악회에 초대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요한 슈트라우스 1·2세 부자(父子)의 흥겨운 왈츠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도, 동시에 프랑스 색채가 흠씬 풍겨나옵니다.
▶올해 84세의 지휘자 조르주 프레트르가 빈신년 음악회에 초청 받아 지휘하고 있다./도이치그라모폰 제공
▶올해 84세의 지휘자 조르주 프레트르가 빈신년 음악회에 초청 받아 지휘하고 있다./도이치그라모폰 제공

첫 곡인 '나폴레옹 행진곡'은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프랑스 국가가 춤곡 버전으로 말미에 살짝 녹아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파리 왈츠'에 이어,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프랑스 풍의 폴카 '파리의 여인'까지 '왈츠 부자'가 언제 이처럼 프랑스 취향에 심취했었나하고 놀라게 됩니다.

신년 음악회가 '빈=왈츠'라는 공식을 철저하게 적용한다면, 베를린의 송년 음악회는 '독일 관현악의 중심'이라는 고정 관념을 뒤흔듭니다. 지난 연말 송년 음악회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이 골라든 곡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보로딘의 교향곡 2번 등 온통 러시아 작품입니다. 독일 관현악 1번지에서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를 제쳐놓고 러시아 산(産)으로 채우는 상상력이 짓궂기 그지 없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에서도 래틀은 라벨 편곡의 관현악을 밖으로 확장하며 억지로 감동을 강요하는 대신, 거꾸로 안으로 응축시키며 개별 악기의 매력을 한껏 되살립니다.

빈이 음악 전통을 꾸준하게 보존하면서 명품을 가꿔낸다면, 베를린은 거꾸로 파격을 통해 신선함을 준다는 점에서 둘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통이든 실험이든 두 계절 음악회는 한국에서 벤치마킹(benchmarking)하기에 좋은 모델입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