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자·일일스승·독주자… 3 일(日)3색(色)

입력 : 2008.02.25 03:21

내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화제

23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4층. 최근 세계적 음악 매니지먼트 회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사(社)와 전속 계약을 맺은 피아니스트 김선욱(20)이 공개 레슨(마스터 클래스)을 받기 위해 무대로 나섰다. 골라 든 곡은 2006년 리즈 국제 콩쿠르 우승 당시 준비했던 베토벤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이었다. 단 두 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2악장을 마칠 때쯤에는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굵고 큰 스케일로 연주했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서 김선욱의 '일일 스승' 역할을 맡은 피아니스트는 안드라스 쉬프(55)였다. 2층 객석에서 진지하게 경청하던 쉬프는 연주가 끝나자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오더니 "별로 할 말이 없군요"라는 칭찬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쉬프(오른쪽)가 김선욱을 지도하고 있다. /마스트 미디어 제공
23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쉬프(오른쪽)가 김선욱을 지도하고 있다. /마스트 미디어 제공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막상 쉬프는 건반 옆에 나란히 앉자마자 다시 꼼꼼하게 작품을 분석해 갔다. 그는 "피아노를 단순히 하나의 악기로 여기지 말고, 모든 악기가 어울리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상상하며 연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피아노의 저음(低音)은 바순을, 서정적인 대목에서는 현악의 부드러운 노래를, 크게 내딛는 부분에서는 관악의 우렁찬 울림을 각각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쉬프는 이날 4시간 마스터 클래스 내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교향곡과 '파우스트'를 인용하고 말발굽 동작을 취하거나 직접 멜로디를 불러가며 상상력을 동원하라고 당부했다.

쉬프는 "나이 어린 영재들에 대한 칭찬에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한국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실력은 무척 빼어나다"고 칭찬한 뒤, 그 자리에서 김선욱을 스위스의 명문 음악제인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대하기도 했다.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 등 고전적 레퍼토리에서 격조 있는 해석으로 이름 높은 쉬프가 첫 내한 무대에서 사흘간 세 가지 표정을 모두 보여줬다.

첫날인 22일 예술의전당에서는 같은 헝가리 출신의 동료 첼리스트인 미클로스 페레니의 반주자로 나섰다. 둘째 날인 23일 마스터 클래스의 일일 스승으로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지도한 뒤, 마지막 날인 24일에는 피아노 독주회를 열었다. 반주자와 독주자, 일일 스승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 그의 내한에 많은 음악 팬들이 사흘간 그와 동선(動線)을 함께했다.

페레니와의 듀오 연주회에서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2~4번으로 호흡을 맞췄다. 쉬프는 꼼꼼하면서도 엄격한 피아노 연주로 첼리스트 특유의 과장 없고 서정적인 현(絃)을 뒷받침했다. 쉬프는 무대에서 나가고 등장할 때마다 박수를 보내는 객석 앞쪽뿐 아니라 뒤쪽의 합창석에도 빼놓지 않고 인사를 보내는 따뜻한 풍경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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