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법은 달라도 바흐는 하나

입력 : 2008.02.21 02:25

누가 진짜 바흐인가. 사순절 기간을 맞아 오는 27~28일 영국의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와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합창단이 바흐의 종교 음악을 갖고 잇달아 내한 공연을 갖는다. 이들은 마치 서로 다른 해도(海圖)를 들고, 같은 지점을 향해 나가는 항해사들과 같다. 바흐의 종교 음악을 지향하지만, 이들의 접근법은 판이하다.

◆지휘자가 있다 vs 없다

오는 28일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연주하는 영국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내한 공연에서는 별도의 지휘자를 찾아볼 수 없다. 악장의 바이올린 리드에 따라 연주를 진행하며, 복음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에반겔리스트(복음사가) 역의 테너 마크 패드모어(Padmore)가 공연의 음악 감독까지 맡는다. 이를테면 경기장에서 직접 뛰면서 작전 지시도 내리는 '코치 겸 선수'인 셈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합창단은 음악 감독의 지휘로, 어린이 합창단이, 현대 악기의 연주를 통해 바흐에 다가간다. /성 토마스 합창단 제공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합창단은 음악 감독의 지휘로, 어린이 합창단이, 현대 악기의 연주를 통해 바흐에 다가간다. /성 토마스 합창단 제공
패드모어는 전화 인터뷰에서 전문 지휘자라는 개념은 '19세기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바흐의 시대에는 별도의 지휘자가 없었어요. 모차르트의 시대에도 사실상 제1바이올린을 맡는 악장이나 피아니스트가 음악을 이끌고 갔지요." 그는 "'누가 지휘하는 바흐'라는 고정 관념 대신에, 연주에 참여하는 모든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면서 조율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의 공연에서는 바흐가 몸담았던 교회 합창단의 현재 음악 감독(칸토르)인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Biller)가 지휘를 맡는다.

◆소년 합창단 vs 성인 합창단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10~18세의 소년 9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한 공연에서도 독창(獨唱)은 성인 성악가들이 맡지만, 합창(合唱)은 이 소년 합창단 가운데 65명이 맡는다. 바흐가 이 교회 합창단의 음악 감독을 지내면서 교회 당국에 보냈던 탄원서 등을 비롯해 역사적 상황과 조건을 감안한 편성이다.

반면 영국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독창자가 포함된 성인 합창단 12명이 '요한 수난곡' 가운데 합창 대목을 부른다. 음악학자 조슈아 리프킨은 바흐 당시의 종교 음악에서 별도의 합창단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며, 독창자들이 합창까지 함께 불렀다는 주장(최소 편성)으로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성인 합창단이 옛 악기의 연주로 바흐에 접근한다. /유유클래식 제공
영국의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성인 합창단이 옛 악기의 연주로 바흐에 접근한다. /유유클래식 제공

◆옛 악기 vs 현대 악기

영국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는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작품에 다가가야 한다는 '당대 연주'에 비교적 충실한 음악 단체다. 내한 공연에서도 현대 악기의 쇠줄 대신에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거트 현(絃)을 사용한다. 반면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함께 내한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현대 악기를 사용한다.


옛 악기와 현대 악기의 경계선이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패드모어는 "당대 연주로 바흐의 종교 곡을 자주 연주하지만, 2010년에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마태 수난곡'을 연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성 토마스 합창단은 지난 2006년에는 당대 연주 단체인 라이프치히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B단조 미사'를 녹음했다.

한양대 음악연구소장인 강해근 교수는 "'사실은 신성하지만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처럼, 같은 곡이라도 해석이나 연주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모든 세대는 바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어왔으며 그 답변이 달랐을 뿐이다. 바흐를 폭넓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 성 토마스 합창단: 27일 예술의전당 'B단조 미사', 28일 고양아람누리 '마태수난곡'. (02)599-5743


▶ 영국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28일 예술의전당 '요한수난곡'. (02)586-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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