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예술의전당"

입력 : 2008.02.18 02:21

김선욱의 남성적 라흐마니노프 낭만적 오케스트라와 충돌
'불새'에선 관현악 연주 빛나

지난 16일 예술의전당.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반주를 하는 가운데 소프라노 신영옥의 선창으로 '생일 축하' 노래가 콘서트 홀에 울려 퍼졌다. 신영옥이 객석에 손짓을 보내자 청중들도 올해 개관 20년을 맞은 예술의전당을 축하하며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를 함께 불렀다. 예술의전당판 '열린 음악회'가 열린 셈이었다.

이날 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KBS 교향악단(지휘 김홍재)과의 협연 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골랐다. 김선욱은 느리고 여리게 출발해서 점차 빠르고 커다란 파고(波高)를 그려가야 하는 1악장 도입부부터 지나친 감상을 절제하는 대신 강건하고 남성적인 필치로 접근해갔다. 하지만 독주자가 앞서가고자 할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제자리에 머무르려 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1악장 도입부에서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선 굵은 저음 위에서 오케스트라 현악이 선율을 그려낸다면, 중반에는 거꾸로 현악의 든든한 바탕 위에서 피아노가 유려하게 노래하며 절정을 맞는다. 이같은 극적인 도치(倒置)는 곡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요소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기존의 낭만적 접근에 충실했고, 관습에서 한 발짝 벗어나고 싶어하는 독주자와 때때로 충돌을 빚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6일 예술의 전당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KBS 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예술의 전당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6일 예술의 전당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KBS 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예술의 전당 제공

오케스트라는 2부 연주곡인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에서 오히려 빛을 냈다. 음량(音量)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아기자기한 실내악 앙상블을 듣는 듯한 묘미를 살렸다.

소프라노 신영옥은 전체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음향 보정 장치를 사용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콘서트 홀의 문을 나서니, 어둠 속 건너편으로 지난해 연말 화재 사고를 겪은 오페라극장이 보였다.

이렇듯 개관 20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은 화려함과 초라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20주년 프로그램이 새로운 연주자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보다는 김선욱과 신영옥,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17일)을 비롯해 소프라노 조수미(5월 23일)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6월 4일) 등 기존의 스타들을 다시 소개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점은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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