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곡엔 인류 고난과 희생 메시지 담겨"

입력 : 2008.02.16 01:21

우리 시대 에반겔리스트 마크 패드모어 인터뷰

작곡가 바흐 서거 250주기이자 새로운 밀레니엄을 열었던 2000년. 영국 국립 오페라는 바흐의 종교 음악인 '요한 수난곡'에 연출을 가미해 극 형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연출가의 아이디어로 연주 후반부에는 살아있는 양을 등장시켰다. 마지막 합창에서 이 양은 이따금씩 "음매~" 하는 소리를 내면서 합창과 협연했다.

당시 공연에서 에반겔리스트(수난곡에서 복음서 부분을 노래하는 사람) 역을 맡았던 테너가 마크 패드모어<사진>(Padmore)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순수한 희생이라는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양을 무대에 등장시켰다. 웃는 청중들도 있었지만 감동적이었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호평을 바탕으로 2년 뒤에 또 다른 양을 같은 무대에 세웠다. 그는 "예전보다 양이 훨씬 조용했다"며 웃었다.

복음사가로 불리는 에반겔리스트는 바흐의 수난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복음서의 내용을 노래하면서 예수의 고난을 담은 수난곡을 이끌고 간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에반겔리스트 가운데 하나인 패드모어가 이달 영국의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서 바흐의 '요한 수난곡' 가운데 에반겔리스트 역을 맡는다. 지휘자 없이 공연되는 이 무대에서 그는 독창자인 동시에 사실상 음악 감독 역할도 맡게 된다.
전문적으로 에반겔리스트 역을 맡다 보니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에피소드도 많다. 2001년에는 자신의 친구인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Isserlis)의 아이디어로 '마태 수난곡'을 함께 연주했다.

당시 공연에서 런던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를 맡았고, 미국의 인기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제1바이올린 주자로 합류했다. 이설리스는 첼로, 패드모어는 역시 에반겔리스트 역을 맡았다. 일종의 '바흐 수퍼스타 오케스트라'가 결성된 셈이었다. 그는 "이설리스는 독주자로 활동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곡을 연주하기를 꿈꿨지만 기회가 없었다.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어 기뻤다"고 했다.

그는 네 살 때 성탄절에 리코더를 선물 받고 18세까지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했다. '성악과 기악의 양수겸장(兩手兼將)'이지만 패드모어는 "음악 전문 학교에서 기악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치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 나는 즐겁게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타계한 지 250여 년이 흘렀지만 바흐의 수난곡은 지금도 매년 사순절 기간이면 지구촌 곳곳에서 어김 없이 울려 퍼진다. 패드모어는 "마치 그리스 고전처럼 수난곡에도 인류가 겪고 있는 고난과 희생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실제 연주에서 노래하는 것은 지금도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 된다"고 말했다.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 바흐 '요한 수난곡',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02)586-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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