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잘 몰랐던 이야기들 많네
'음악의 아버지'가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1717년 11월 6일의 일입니다. 당시 독일 바이마르 궁정악단의 악장 겸 오르간 연주자였던 바흐(1685~1750)는 "너무 귀찮게 자신의 면직을 주장한다"는 죄목으로 주 판사의 구치소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이면 신문 사회면에 오를 일입니다. 한 달에 가까운 수감 끝에 12월 2일 불명예 퇴직 통보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추문(醜聞)에 해당할 법한 일이기 때문인지 바흐가 숨진 뒤 추도문에는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 사건은 일종의 '스카우트 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해 8월 바흐가 괴텐 궁정의 악장을 맡기로 미리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발단이었지요. '차기 소속사'로 이적을 강하게 요구하다가 괘씸죄에 걸린 셈입니다. 오늘날이면 연예 뉴스에 오를 일이겠군요.
타계한 해인 1750년까지 무려 27년간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 재직하며 불후의 종교 음악들을 남겼기 때문인지 바흐에 대한 이미지는 경건함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찾아보면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에피소드도 꽤 많습니다.
1717년 드레스덴에서 바흐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 건반 연주자인 루이 마르샹과 연주 대결을 펼치기로 합니다. 초청 편지를 받은 바흐는 한 술 더 떠서 상대방이 어떤 과제 곡을 제시하더라도 자신은 즉흥 연주에 임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대결 당일 마르샹이 급히 새벽 마차를 타고 떠나는 바람에 경합은 무산됐지만, 바흐는 궁정에서 맘껏 독주 무대를 펼쳤다고 합니다. 당시 32세의 자신만만한 음악가 바흐의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악기 대여업자' 바흐는 어떻습니까. 실제 바흐는 유품으로 쳄발로 8대와 페달 쳄발로 1대,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3대를 비롯해 꽤 많은 악기를 남겼습니다.
본인과 가족, 교회에서 연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한 모양입니다. 1748년 바흐의 서한에는 "이제 저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얼마 동안이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반납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구절이 보입니다. 마치 오늘날 비디오 대여점의 반납 독촉 메시지 같습니다.
라이프치히 시절, 바흐가 몸담았던 토마스 학교에는 음악 감독이 매달 한 번씩 학생 생활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규칙에는 "감시관은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하며, 소년들을 정해진 시간에 깨우기 위해 여름에는 새벽 5시, 겨울에는 6시에 일어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머리 글자만 따면 바흐는 영락없이 'B사감'이었던 셈입니다.
오는 28일은 '바흐의 날'입니다. 영국의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와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같은 날 바흐의 종교 음악을 연주합니다. 바흐 연구의 석학인 크리스토프 볼프의 두 권짜리 '요한 세바스찬 바흐'(한양대 출판부)를 읽어보면서 음악의 아버지를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요.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바흐 '요한수난곡', (02)586-2722
▶성 토마스 합창단, 27일 예술의전당, 바흐 'B단조 미사'. 28일 고양아람누리 '마태수난곡'.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