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일깨우는 암코양이… 한국의 그리자벨라를 찾아라

입력 : 2008.01.31 01:06   |   수정 : 2008.01.31 05:02

뮤지컬 '캣츠' 여주인공 오디션 현장

29일 오후 서울 약수동의 한 뮤지컬 아카데미. '캣츠 한국 배우를 찾는다'는 오디션 포스터가 붙어 있다. 2층 연습실에서는 앙상블 배우 심사가 한창이었다. 왼손에 오른손을 포개고 발뒷꿈치 들고 점프, 한 바퀴 돈 뒤 꼬리 흔들고, 질주하다 뛰어넘고…. 배우들은 벌써 절반은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경쟁자가 삽입곡 '젤리클 축제' 멜로디에 몸을 실으며 춤 오디션에 임할 때, 다른 이들은 10m 떨어진 자리에서 그림자처럼 그 동작을 따라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실수하고 "아이고 아부지―"를 내뱉는 배우도 있었다.

진행요원이 "그리자벨라 콜(호출) 받으신 분만 남아주세요" 하자 연습실엔 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오디션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건 '미스 사이공'의 김선영, '대장금'의 양꽃님, '넌센스'의 진복자 등 낯익은 이들을 포함해 무명 배우까지 13명. '아이다'의 문혜영을 비롯해 그리자벨라 오디션을 따로 치른 배우들을 더하면 모두 16명이 한 배역을 향해 돌진한 날이었다.
올 가을 한국 배우들로 공연할 뮤지컬‘캣츠’오디션장에서 그리자벨라 최종 후보들이 안무가로부터 춤을 배우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올 가을 한국 배우들로 공연할 뮤지컬‘캣츠’오디션장에서 그리자벨라 최종 후보들이 안무가로부터 춤을 배우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우선 춤 오디션. 후보들은 축제가 끝나고 텅 빈 무도회장에 혼자 남은 그리자벨라의 내면을 몸으로 표현해야 했다. 연출가 겸 안무가 조앤 로빈스는 직접 시범을 보이며 "그리자벨라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메노포즈'의 이윤표는 이미 배역이 안고 있는 슬픔에 젖어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13명의 후보들은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리자벨라의 화려했던 과거와 볼품없이 늙어버린 현재를 왕복하며 감정의 진폭을 드러냈다. 시선과 팔은 힘차게 하늘을 향했다가 맥없이 떨어졌다.

3층으로 자리를 옮겨 가창력을 심사했다. 음악감독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가운데 한 명씩 나와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를 열창했다. 주먹을 불끈 쥐거나 눈 감고 기도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대기 풍경도 가지각색이었다. '메모리'는 여배우들이 오디션장에서 자주 부르는 명곡이지만, 각자 한 번씩 총 13번이 울려 퍼진 이날은 더 특별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진공상태, 감정을 뭉치게 하는 호소력, 전율을 일으키는 성량, 몸의 표정 등 배우들은 저마다 장점이 있었다. "노래할 때 생각이 너무 많다" "두성(頭聲)을 내지 마라" 같은 지적도 나왔다.
‘캣츠’의 늙고 외로운 고양이 그리자벨라. /설앤컴퍼니 제공
‘캣츠’의 늙고 외로운 고양이 그리자벨라. /설앤컴퍼니 제공
조앤 로빈스는 "인재가 많아 괴롭다"는 말로 한국 배우들을 호평했다. 그리자벨라 선발 기준에 대해서는 "음악적인 톤이 중요하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정서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모리'는 "날 어루만지면 행복이 뭔지 알게 될 거예요/ 봐, 새날이 시작됐어~"로 끝난다. 이날 그리자벨라 후보들이 로빈스로부터 들은 마지막 말은 "행운을 빌어요(Good luck)!"였다.

올 여름 한국 배우들로 초연할 뮤지컬 '캣츠'최종 오디션 현장에서 지망자들이 영국 안무가로부터 춤동작을 배우고있다.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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