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잎 클로버로 행복을 낚은 이 남자

입력 : 2008.01.18 00:35   |   수정 : 2008.01.18 02:23

가구 디자이너 김선태씨, '타셴' 선정 현대 디자이너 90명에 뽑혀
"바이블처럼 여겼던 타셴 책 나를 선정했다는 게 안믿어져"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 이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무심코 밟는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가구 디자이너 김선태(36)씨는 평범한 세잎 클로버로 행복을 낚았다.

김씨는 세계적인 예술서적 출판사인 '타셴(Taschen)'이 현대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디자이너 90명을 선정해 발간한 '디자인 나우(Design Now!)'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소개됐다. 함께 선정된 디자이너들은 필립 스탁, 론 아라드 등 당대 최고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학생 때부터 바이블처럼 여겼던 미술 서적에 소개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네요." 김씨는 아직도 얼떨떨해 했다. 책에 소개된 김씨의 대표작은 세잎 클로버를 형상화한 과일 접시 '클로버'. 얇은 나무 베니어판을 여러 겹 붙인 다음 휘어서 표현하는 그만의 재주가 농축된 작품이다. 지난 2006년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살로네 사텔리테'에 전시돼 주목받은 이 작품은 귄위 있는 디자인 잡지 '월페이퍼'와 '인테르니'에도 소개됐다.

나무를 이용한 그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하다. 바람결에 날아갈 듯한 모양의 티테이블 '플라이우드(Flywood)', 조약돌 모양의 벽걸이형 스피커, 산세베리아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메모꽂이 '트위스트 홀더(Twist holder)' 등 그의 작품엔 뒤통수를 탁 치는 위트는 없지만, 조용히 스며드는 은은함이 있다. 요즘 디자인계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세잎 클로버 모양의 과일 접시 작품을 가슴에 안고 있는 작가 김선태씨. 그는‘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이태경 객원기자 ecaro@chosun.com
세잎 클로버 모양의 과일 접시 작품을 가슴에 안고 있는 작가 김선태씨. 그는‘질리지 않는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이태경 객원기자 ecaro@chosun.com

작품은 작가를 닮았다. 김씨는 '평범한' 외모 탓에 디자이너보다는 '고시생', '회사원' 분위기란 소리를 듣는다. "디자이너는 외모부터 튀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괴로웠어요. 평범함이 콤플렉스였어요. 이 길을 관둬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어요." 콤플렉스는 대학 시절(홍익대 목조형가구디자인학과) 덴마크에서 열린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떨칠 수 있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디자이너도, 평범한 이웃집 소녀 스타일의 디자이너도 있더군요. 겉치레로 튀는 것보다 생각의 깊이를 달리하는 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어요."

그는 국내보다 전시회를 통해 해외에 먼저 이름을 알렸다. 작가는 "해외에서 알려진 유명세가 국내로 역(逆)유입되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했다. "디자인 선진국에 가면 디자인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평범한 이들이 많아요. 빛을 못 보고 사장될 뻔한 제품이 그런 만남으로 세상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나무판을 구부려 만든 티테이블‘플라이우드’
나무판을 구부려 만든 티테이블‘플라이우드’

◆'타셴'이 선정한 다른 작품들은

김선태씨의 작품이 실린 타셴의 '디자인 나우(Design Now!)'는 현대 디자인에 획을 그은 디자이너 90명과 그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이다. 조명, 가구, 가전, 자동차 등 전 분야를 아울러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초점을 뒀다. 키워드는 '재생', '재활용'.

왼쪽부터 자하 하디드의 조명‘보르텍스’, 론 아라드의 흔들의자.
왼쪽부터 자하 하디드의 조명‘보르텍스’, 론 아라드의 흔들의자.

'삶을 위한 디자인(Designs for life)'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표지 주인공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조명작품 '보르텍스(Vortexx)'. 하디드는 '동대문운동장 프로젝트'로 국내에도 명성을 얻고 있는 최고 주가의 디자이너다. 필립 스탁(Philippe Stark)의 친환경 콘셉트 자동차 'H + car'와 전기자전거 '벨로(Velo)', 론 아라드(Ron Arad)의 흔들의자 'MT Rocker', 이브 베하르(Yves Hehar)의 100달러 노트북 'XO' 등도 포함됐다. 대표적인 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쿠사와 나오토가 만든 휴대폰 '인포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와 애플디자인팀이 공동으로 만든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팟'도 대표 작품으로 뽑혔다.

16일 오후 가구디자이너 김선태씨가 광화문 씨스퀘어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이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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