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속 꽉찬 '장진 코미디'의 힘

입력 : 2008.01.17 01:38

연극 '서툰 사람들'

장영남의 연기 옥타브가 달라졌다. 30대 여배우 중 캐스팅 1순위로 꼽히는 장영남은 연극 '서툰 사람들'(장진 작·연출)에서 뜻밖의 코미디 감각을 보여준다. '로미오와 줄리엣' '버자이너 모놀로그' '멜로드라마'를 거치며 비극의 주인공이나 세련된 현대여성의 옷을 입었던 이 배우는 경쾌하고 말랑말랑한 배역에서도 공간을 장악한다. 재작년 '나생문'에서 잠깐 뭉쳐 던진 웃음은 워밍업이었나보다. '서툰 사람들'에서 장영남은 전공이 희극 아닌가 싶을 만큼 자주, 강하게, 그럼에도 공허하지 않게 관객을 웃겼다.

연극은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화이(장영남)와 여기 들어온 좀도둑 덕배(강성진)의 이야기다. 영어교사 화이는 밤중에 침입한 덕배를 보고 "다 드릴 테니 몸만은…"이라며 오버한다. 매듭법도 까먹을 정도로 서툰 도둑 덕배, 비상금 숨긴 곳까지 가르쳐주며 한없이 조잘대는 집주인 화이는 말다툼을 했다가 통성명에 악수까지 한다. 서로의 마음을 훔치는 관계로의 점프다.

한참을 웃어야 하는 연극이다. 장영남은 아주 가느다란 내숭형 멘트부터 속을 다 드러내는 걸쭉한 웃음소리까지 여러 층위의 화법을 들려준다. 귀여움과 그악스러움을 왕복하며 펼치는 연기가 신선하다. 장진과 영화에서 오래 작업했지만 연극은 3년 만인 강성진, 자살 소동을 벌이는 기러기아빠 등 1인3역을 한 김원해도 안정적이었다.
서툰 사람들’에서 덕배(강성진)가 화이(장영남)의 손가락에 난 피를 빨고 있다. /동숭아트센터 제공
서툰 사람들’에서 덕배(강성진)가 화이(장영남)의 손가락에 난 피를 빨고 있다. /동숭아트센터 제공

장진은 일찌감치 대중의 취향을 꿰뚫고 있었다. 그가 쓴 지 15년 된 이 상황극은 휴대전화와 중국제 짝퉁시계만 새로 집어넣었을 뿐인데 관객과 접촉하는 표면적은 여전히 넓다. 라디오 생방송을 이용한 엔딩도 스타일리스트답다. 영화에 비해 세상을 진동시키는 힘은 미약하지만, 대학로 관객에게 '장진 연극'은 속이 꽉 찬 브랜드라는 게 매표로도 확인되고 있다.

'서툰 사람들'은 올해 주목받는 기획인 '연극열전2'를 연 개막작이다. 연극열전은 2004년 '에쿠우스' '불 좀 꺼주세요' 등 15편으로 17만 관객을 모았던 흥행 시리즈. 연극열전2는 '서툰 사람들'과 '늙은 도둑 이야기'에 이어 추상미 주연의 '블랙버드'(연출 김광보), 이순재·이석준 주연의 '라이프 인 더 씨어터'(연출 황재헌) 등 10편을 릴레이 공연할 예정이다.

▶'서툰 사람들'은 3월 1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6-6007

연극 '서툰 사람들'. /박돈규 기자


연극 '서툰 사람들' 포토영상.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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