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5분 대기… 도밍고의 재현 기대하라"

입력 : 2008.01.10 01:16   |   수정 : 2008.01.10 03:19

[2008 뉴 클래식 리더] <3> 테너 정호윤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 극장)는 성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다. 2006년 이 극장의 전속 가수로 발탁된 테너 정호윤(30)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페라 '오텔로'에 출연한 플라시도 도밍고(테너)가 아내를 죽이기 위해 등장하면서 직접 손으로 눌러서 촛불을 끄는 연기만 보아도 전율에 휩싸였어요. 불 끄는 동작 하나로 질투와 살기(殺氣)를 모두 표현한다고 할까요. 비록 나는 100만큼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 성악가들을 쫓다 보면 언젠가 150을 낼 수 있겠죠."

출발도 좋았다. 첫 시즌에 이미 베르디의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고, 지난 10월에도 '라 보엠'의 주인공 로돌포 역을 4차례 소화하며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빈 슈타츠오퍼의 테너 정호윤은“지금은 이 극장의 월급쟁이 성악가지만, 언젠가 초청 가수로 당당하게 다시 이 무대를 밟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빈 슈타츠오퍼의 테너 정호윤은“지금은 이 극장의 월급쟁이 성악가지만, 언젠가 초청 가수로 당당하게 다시 이 무대를 밟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하지만 극장 전속 가수로 생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명 성악가들은 건강이나 목소리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곧바로 공연을 취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럴 때 정씨의 역할은 곧바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5분 대기조' 역할도 하는 셈이다. "극장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언제라도 30분 내에 무대에 설 수 있게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죠.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고, 밖에 나가 있어도 외출한 게 아니에요. 마음은 늘 극장 무대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2년만에 오페라 24편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레퍼토리를 늘려나갔다.

오페라 애호가인 아버지와 서울시향에서 30여 년간 바이올린 단원으로 근무한 어머니 덕에 3세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웬만한 악기는 다 배워보았다. 하지만 기악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5세 쯤에는 배우던 악기를 모두 그만뒀다. "'토스카'를 외워서 부를 정도였던 아버지께선 저를 노래 못하는 아이라고 불렀어요. 집에서 음악적으로 매장이라도 당한 듯했고 상처가 컸나 봐요. 집에서 노래할 때면 언제나 커튼 치고 방문 잠그고 이불까지 뒤집어 쓰고서 조용히 불렀어요."

음악 가족의 '미운 오리'였던 셈이지만, 인문계 고교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음반 한 장이 정씨의 행로를 바꿔놓았다. "교양이라도 쌓으라고 하시며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가 함께 불렀던 '스리 테너(Three Tenor)' 음반을 주셨어요. 파바로티 같은 성량이나 도밍고 같은 완벽함은 없었지만 따뜻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카레라스에게 이끌렸어요."

성악에 대해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늦게 고교 3학년 때 박인수 서울대 명예교수를 찾아갔고 그 테스트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대학 합격 후에도 은사가 된 박 교수의 집에서 1주일에 사나흘씩 숙식을 하면서 사사했다.

"스승께서는 지금도 제자가 새해 문안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려고 하면 맞절을 하자고 하실 만큼 소탈하고 인간적이세요."

지금은 유럽 최고 오페라 극장의 '월급쟁이 성악가'라고 정씨는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초청 가수로 이 극장 무대를 다시 밟고 싶다"고 했다.

테너 정호윤씨 인터뷰.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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