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꾸지 않았다, 단지 하루하루를 불태웠을 뿐”

입력 : 2008.01.03 00:34   |   수정 : 2008.01.03 02:43

세계로 점프한 한국 발레 [1] 강수진

세계 정상급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 발레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는 ‘세계로 점프한 한국 발레’ 시리즈를 시작한다. 70여 년의 짧은 발레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20여명의 세계적인 발레 무용수를 수출했다. 그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도약하고 있는지 그 현장을 답사했다.


발레리나 강수진(41·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무용수)에게 한 해의 끝은 12월 31일이 아니었다. 시즌 마지막 공연으로 ‘크랑코 무브2’와 ‘카르멘’을 올린 지난달 26일, 커튼콜 때 관객이 터뜨린 환호성과 박수가 그에겐 ‘제야(除夜)의 종소리’였다. 토슈즈를 벗고 몸의 언어에서 빠져나온 발레리나가 내뱉은 첫 마디는 이랬다. “내일 당장 김치 사러 갈 거예요!”

26년 전 고국을 떠났지만 오프시즌(off-season)엔 DNA를 속일 수 없다. 강수진은 “김치를 먹으면 땀으로 냄새가 배어나고 파트너(남자 무용수)에겐 예의가 아니다”며 “시즌 중엔 김치도 마늘도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1년이 저물고 한 살 더 먹는다.

“ ‘Time flies(시간 참 빠르다)!’ 내게 한 해는 늘 마라톤이다. 파트너와의 나이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현재 파트너는 24세의 네덜란드인). 내 몸에 쌓인 발레 언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007년 당신은 ‘캄머 탠처린(궁정무용수)’ 칭호를 받았고 ‘존 크랑코 상’도 차지했다.

“감사할 일 많은 해였다. 그러나 무용 인생 험하기는 상을 받으나 안 받으나 똑같다. 수상한 다음 날도 아침 6시에 일어나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사람들은 내게서 근사한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내 생활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쩌면 꿈꾸지 않고 지루한 하루 하루를 반복한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발레‘마술 피리’무대의 강수진. 몸의 어휘력이 풍부해 음악이 보이는 춤을 춘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제공
발레‘마술 피리’무대의 강수진. 몸의 어휘력이 풍부해 음악이 보이는 춤을 춘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제공

당신이 군무진(코르 드 발레)부터 수석 무용수까지 꿈을 전진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 ‘오네긴’조차, 난 꿈꿔본 적이 없다. 목표 정하고 ‘언제까지 저걸 못 하면 난 죽어’ 다짐하는 식이었다면 일찌감치 무용을 접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톱에 오른 사람들은 보어링한(지루한) 인생을 가지고 있다.”

동양인이라는 게 도움이 되나?

“난 어릴 적 한국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고 춤도 한국무용부터 배웠다. 15세 때 한국을 나왔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요즘 한국의 젊은 무용수보다는 내가 더 한국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강한 뿌리가 인내심과 표현력에 도움을 준다.”



어떤 작품에 임할 때 특별한 접근법이 있다면.

“우선 관련 서적을 찾아 읽는다. 거기서 얻어낸 상상력을 몸에 집어넣는다.”



강수진 세대의 발레 무용수들은 대부분 은퇴했다.

“무용은 숙성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예술이다. 난 자존심이 강해서 내 춤에 에너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 날로 내려올 것이다.”



한국 발레리나 키 쑥쑥… 10년 전보다 5cm 커졌다 

발레리노도 체격 좋아져… 서구와 맞먹어 

한국 발레 무용수의 체형이 10여년 사이 서구보다 좋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은 2일 “1984년부터 현재까지 역대 단원 178명(여자 114명)의 체형을 분석한 결과, 발레리나는 키가 커지고 발레리노는 체격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여러 콩쿠르 심사에 참여하는 강수진이 “요즘 신체 조건이 가장 좋은 발레 무용수는 중국과 한국에서 나온다. 몸의 하모니(조화)가 훨씬 좋아졌다”고 한 말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다.

UBC에 따르면 2003~2007년 입단한 여자 32명의 평균은 키 167.5㎝, 몸무게 46.6㎏였다. 1990~1995년 입단한 여자 32명(평균 162.8㎝, 45.5㎏)과 비교하면 10여년 사이 신장은 약 4.7㎝, 몸무게는 1.1㎏ 늘어난 것이다. 남자의 경우 1991~1995년 입단한 17명이 평균 175.5㎝에 62.1㎏이었지만 2002~2007년 입단한 17명은 177.8㎝에 66.1㎏으로 신장보다는 체중(근육량) 변화가 두드러졌다.

1980년대엔 발레리나가 163㎝만 돼도 큰 키였지만 지금 그 신장으로는 특별한 장점이 없는 한 입단조차 어렵다. 현직 발레단원들의 경우 체중이 불어날 경우 정도에 따라 ‘상담’, ‘경고’, ‘등급 조정’을 받고 있다. 노명숙 UBC 의상실장은 “공연 의상 교체 시기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잔콩쿠르, 2002년 이후 한국인 입상자 13명 

1985년 강수진이 처음 입상한 스위스 로잔콩쿠르와 한국 발레 사이의 인연은 2000년대 들어 대량 증폭되고 있다. 강수진 이후 로잔 시상식은 90년대 말까지 한국인을 단 한 명도 호명하지 않았지만,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3명을 불렀다. 2005~2007년엔 총 입상자 18명 중 한국인이 6명(33%)을 차지했을 정도다.

1973년 시작돼 올해 36회째를 맞는 로잔발레콩쿠르는 10대(15~18세) 발레 무용수의 등용문이다. 입상자에겐 상금 외에 발레아카데미나 프로 발레단에서 1년간 연수할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 한국 무용수들의 콩쿠르 대거 입상에 대해 강수진은 “일단 신체 조건이 서양 참가자들보다 좋고 테크닉도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월 29일부터 2월 3일까지 열리는 올해 로잔발레콩쿠르에는 비디오 심사를 통해 22개국 71명을 본선 진출자로 확정했다. 이들 중 한국인은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입상자인 채지영 등 11명으로, 일본(17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강수진의 집 같은 독일 공연장. /박돈규 기자


강수진은 이렇게 몸 푼다(1).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연습실에서. /박돈규 기자


강수진은 이렇게 몸 푼다(2).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연습실에서. /박돈규 기자


강수진은 이렇게 몸 푼다(3).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연습실에서. /박돈규 기자


강수진은 이렇게 몸 푼다(4).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연습실에서. /박돈규 기자


강수진은 이렇게 몸 푼다(5).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연습실에서. /박돈규 기자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코치. 안무가 존 크랑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돈규 기자


강수진이 2007 시즌 마지막 공연을 한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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