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대화를 주고받는 듯…

입력 : 2007.12.29 01:00

[리뷰] 서울시향 마지막 브람스 관현악 시리즈

매진된 공연에는 늘 긴장감이 따른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新作)이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기다리는 심정처럼.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마지막 브람스 관현악 시리즈에서도 시작 전부터 복도를 가득 채운 청중의 모습에서 가벼운 흥분이 묻어났다. 최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음반으로 ‘그라모폰’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음반상을 휩쓴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리(Freire)의 협연에 예술 감독 정명훈의 지휘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명훈과 국내외 유명 협연자의 만남은 최근 서울시향의 ‘매진 공식’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피아노 협연은 연주자의 경력만큼이나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었다. 유려하면서도 낭만적인 호른의 선율을 피아노가 따라가면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막 오른다. 표정을 바꾼 1악장의 첫 피아노 독주 대목부터 프레이리의 출발은 다소 불안했다. 마디와 마디를 이어주는 이음새는 튼튼하지 못했고, 호흡은 거칠었다. 오히려 서울시향의 풍윤한 현악이 1악장에서 불안한 건반을 넉넉하게 감쌌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협연이 끝난 뒤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리(왼쪽)과 지휘자 정명훈은 관객들의 박수에 손을 맞잡았다. /서울시향 제공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협연이 끝난 뒤 피아니스트 넬손 프레이리(왼쪽)과 지휘자 정명훈은 관객들의 박수에 손을 맞잡았다. /서울시향 제공
브람스 협주곡은 다른 낭만주의 레퍼토리와는 달리, 오케스트라가 독주 악기의 반주 역할에 그치지 않고 대등한 동반자 입장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빚어낸다는 데 매력이 숨어있다.

3악장 도입부에서 객원 수석인 마크 코소워(Kosower)가 이끄는 첼로 선율은 따뜻하기 그지 없었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한껏 낮추자, 피아노와 목관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재미가 되살아났다. 프레이리의 영롱한 건반은 마지막 앙코르로 들려준 글룩의 곡에서 가장 빛났다. 목관으로 종종 연주하는 곡을 피아노로 들려주자 서울시향의 목관 주자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진지하게 지켜봤다.

이날 연주회는 5차례의 관현악과 4차례의 실내악 등 모두 9차례에 걸쳐 열렸던 서울시향 브람스 시리즈의 종결편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은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에서 들릴 듯 말 듯할 정도로 여리게 현악을 출발해서 점차 굵은 소리를 빚어내며 두터운 질감을 빚어냈다.

1악장에서 현악과 관악 사이의 호흡이 조금 더 고르게 정돈됐으면 하는 바람이 남았지만, 다소 빠르게 박자를 잡아간 3악장에서 악단의 집중력은 최고점에 이르렀다. 정명훈은 3악장을 다시 앙코르로 들려주며 올 한 해 화두(話頭)로 삼았던 브람스와 작별을 고했다. 정명훈의 ‘집권 3년차’인 내년에는 말러 교향곡 4·9번 등으로 다시 나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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