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18 00:38
| 수정 : 2007.12.18 03:09
한 소장자가 고려시대 것이라며 내놓은 채색화… 시기 논란
전문가들
“비단의 탄소연대측정 결과 1000년 전 것 그림은 나중에 그린 것”
비단에 그린 채색화 한 점(가로 33×세로 80㎝)이 공개됐다. 소장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려시대 그림”이라고 했다. 최첨단 탄소연대측정 방식인 AMS(가속기 질량분석)로 측정한 결과,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비단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990~1210년(정확성 94.9%) 것이었다. 분석을 맡은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윤민영 연구교수는 “다른 것과는 달리 두 번이나 측정해서 얻은 값”이라며 “99.7%의 정확성으로 이야기한다면, 이 비단의 제작 시기는 서기 935~1265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 남은 고려시대 그림은 고려 공민왕이나 고려 말의 문신 이제현이 그린 것 등 단 몇 점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고려 것이라면 국보 중의 국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살핀 미술사학자들은 “고려 그림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술사학자들이 AMS 결과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비단은 고려시대 것이 맞는데, 왜 그림은 고려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국내에 남은 고려시대 그림은 고려 공민왕이나 고려 말의 문신 이제현이 그린 것 등 단 몇 점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고려 것이라면 국보 중의 국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살핀 미술사학자들은 “고려 그림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다고 미술사학자들이 AMS 결과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비단은 고려시대 것이 맞는데, 왜 그림은 고려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본지는 소장자의 동의를 얻어 이 그림을 미술사 분야의 문화재위원인 A씨(익명 요구)와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에게 직접 보여 주었다. 역시 문화재위원인 홍선표 이화여대교수는 사진으로 그림을 살폈다. 고목과 바위, 그리고 풀과 대나무에 새 다섯 마리가 깃든 것을 묘사한 작품이다. 풀에는 원래 붉은 꽃 등도 그렸지만, 현재는 색깔이 지워졌다.
원로 미술사가 A씨는 “국적도 제작 연대도 단정할 수 없다”며 “다만 최근에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새들이 어디에 앉았는지 애매모호하게 그린 것은 중국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명암 대비와 형상들의 각(角)을 특징적으로 묘사한 것은 명대의 특징적 화풍인 절파(浙派)풍이다, 윤곽선을 이루는 점들이 죽 들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그림의 특징이다, 묵(墨)이나 붓을 쓴 방식 등은 복합적이다, 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그림 제작 시기를 조선 중기로 보았다.
고려불화가 전공인 정 관장은 “비단을 만든 시기와 그림을 그린 때는 다르다”고 확언했다. 그는 “이 그림은 작품을 아래로 늘어 뜨려 보는 족자(簇子)”라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비단의 가로 올들이 중력을 받아 늘어졌어야 하는데 너무나 일정하다”고 했다. 1000여 년 전 비단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후대에 그렸다는 것이다. 그는 “비단에 그린 그림은 시간이 지나 비단이 마르면서 색채와 바탕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데, 그런 균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라고 했다.
홍 교수는 “바위 표현 등에서 중국 절파풍이 있지만 물기가 많은 상태로 그리거나 한국이나 중국 그림에서는 흔치 않은 흰 새를 그린 방식 등에서 일본 가노파(狩野派·15~19세기)풍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세 학자 모두 화풍이나 색채, 재질 보존 등에서 “20세기 이후의 최근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0년 전 그림도 아니다”라고 동의한 셈이다.
소장자는 “고려 그림이 제대로 남지 않아서 화풍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그림이 고려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원로 미술사가 A씨는 “국적도 제작 연대도 단정할 수 없다”며 “다만 최근에 그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새들이 어디에 앉았는지 애매모호하게 그린 것은 중국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명암 대비와 형상들의 각(角)을 특징적으로 묘사한 것은 명대의 특징적 화풍인 절파(浙派)풍이다, 윤곽선을 이루는 점들이 죽 들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그림의 특징이다, 묵(墨)이나 붓을 쓴 방식 등은 복합적이다, 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그림 제작 시기를 조선 중기로 보았다.
고려불화가 전공인 정 관장은 “비단을 만든 시기와 그림을 그린 때는 다르다”고 확언했다. 그는 “이 그림은 작품을 아래로 늘어 뜨려 보는 족자(簇子)”라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비단의 가로 올들이 중력을 받아 늘어졌어야 하는데 너무나 일정하다”고 했다. 1000여 년 전 비단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후대에 그렸다는 것이다. 그는 “비단에 그린 그림은 시간이 지나 비단이 마르면서 색채와 바탕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데, 그런 균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라고 했다.
홍 교수는 “바위 표현 등에서 중국 절파풍이 있지만 물기가 많은 상태로 그리거나 한국이나 중국 그림에서는 흔치 않은 흰 새를 그린 방식 등에서 일본 가노파(狩野派·15~19세기)풍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세 학자 모두 화풍이나 색채, 재질 보존 등에서 “20세기 이후의 최근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0년 전 그림도 아니다”라고 동의한 셈이다.
소장자는 “고려 그림이 제대로 남지 않아서 화풍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그림이 고려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