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성기웅
“누가 일곱 문을 가진 도시 테베를 건설하였는가?”
그 어느 사료도 무명의 석공들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다.
- 카를로 긴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p.23
역사란 거창한 게 아니다. 그것은 다만 과거를 서술한 기록일 뿐이며, 지금 이 순간도 과거로 편입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역사는 거창한 것이었다. 사학자들은 선택된 자들의 발자취를 좇을 따름이었다. 그 속에서 범부에게 맡겨진 역할이란 고작 총인구수를 나타내는 일개 숫자에 불과했다. 이러한 역사관에 봉기하여 일어난 것이 미시사로, 미시사학자들은 망원경 대신 현미경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았다. 미시사의 등장으로 인해 개인은, 그가 아무리 무명씨라 할지라도, 한 시대를 증언하는 목격자로 등극할 수 있었다.
“전향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른들께선 (작품을) 좋게 봐주셨는데, 비판은 오히려 386세대에서 심했던 것 같아요. 좀 더 대의명분을 중시한다 할까요....... 물론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일문제 등을 다루는 게 쉽지는 않지만, 단순한 선악구도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냉철한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완전히 역사의식이 없는 게 아니고, 그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개인을 그리려 했을 뿐입니다.” 인터뷰가 한참 진행된 후 조심스레 던진 질문에 대해 돌아온 성기웅의 더더욱 조심스러운 답변이다. 문제의 작품은 지난 달 4일 막을 내린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이하 ‘구보씨’)로 그는 이 작품의 극작과 연출을 맡았던 장본인. '구보씨'는 소설가 박태환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모티프로 하여 일련의 소설과 저자가 살았던 1930년대의 시대를 묘사한 작품이다. 앞서 인용한 부분은 ‘혹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에디터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활자화된 답변은 강경한 문체를 띠나, 기실 그의 어투는 무척 조심스러웠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의 학번이 그가 사회적 담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극작가이자 연출가 성기웅.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젊다면 젊은 연배지만, 유난히 그의 작품들은 예스럽다. 1930년대라는 궤를 함께 한다. 전작인 '조선형사 홍윤식'이 1930년대 경성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이번 작품 '구보씨'가 그러하며, 미발표작인 '수산의 편지'가 그렇다. “아버지 세대로부터 6.25전쟁이나 박정희 정권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누님은 국악을 전공하셔서, 전통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요. 그런데 전통적 과거와 현대사가 너무 이질적인 거죠.” 덧붙여 그는 1930년대에 대해 이 땅의 국호가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변모했던 격변기지만, 지금 그 변화의 과정을 알 수가 없다 한다. 암흑기인 그 시절에 관한 기록의 보존 상태 또한 암흑 수준인 탓이다. 그것이 그가 회중전등을 켜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1930년대로 내려간 까닭이다.
그가 1930년대로 회귀한 이유는 또 있다. “30년대는 우리나라, 혹은 서울에 도시문화가 막 뿌리를 내린, 이 땅에 현대적인, 도시적인 것들이 비로소 싹튼 시기예요. 식민 지배를 받았던 불행한 역사 때문이긴 하지만, 그 시절의 서울은 여러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문화적인 환경을 어설프게나마 형성했던 그런 시기죠.” 암흑기였던 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황금기였다. 역사의식도, 민족의식도 없는 궤변인가 싶겠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 맞다, 1930년대는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 시킨 전시체제 시기이며, 황민화정책으로 현실참여문학이 뒷걸음친 시기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적인 경향의 순수문학과 모더니즘이 만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때 만큼 직유 아닌 은유가 활개 친 시기가 있을까. 신문물과 신사상이 유입되면서 여러 가치관이 혼재했던 시기이자 문학적으로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공존했던 시기,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불행을 깔고 있어 행복했던 시기’인 이 시기에 어찌 주목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이 아이러니한 시기를 표현하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고증의 어려움은 많죠. 소품이나 의상처럼 그 시대를 보여주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나마 시각적인 부분은 남겨진 자료를 통해 볼 수 있으니까 다행이에요. 가장 어려운 일은 ‘말’의 재현이에요. 글을 통해 당시의 서울말을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실제 화술에 있어서 어떤 억양을 구사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럴 때면 우리나라가 자료를 남기지 않는 게 안타깝죠.”
그런 그가 현재는 연극 '과학하는 마음' 준비로 잠시 외도 중이다. '과학하는 마음'은 순수한 열망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뒤늦게 찾아온 불안과 회의로 고민하는 이학도들의 삶을 다룬 작품. 그러나 이런 행보 - 현재를 다루는 행보 - 또한 전혀 뜬금없는 건 아니다. '과학하는 마음'은 연극 '서울시민'으로 그를 연극계의 미시사학자 길을 걷게 한 일본의 중견 극작.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으로, 누구도 탐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현실의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는 그런 연극이다. '과학하는 마음'은 '북방한계선의 원숭이', '발칸 동물원'과 함께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시리즈 3부작 중 1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그는 '과학하는 마음'에 이어, 1월에 '발칸 동물원'을 선보일 계획이다. 덕분에 한 동안 ‘성기웅 표 경성야사’는 기대하기 힘들 듯.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주는 소식이 있다. 그가 현재 1936~7년을 배경으로 한 문인들의 생활상과 연애담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향수를 품고 있는데, 그 향수를 잊지 않고 싶다. 더 퍼뜨리고 싶다’는 말로 자신의 연극관을 표명했다. 이에 에디터는 ‘발바닥에 땀띠가 나도록 재미없고 냄새 고약한 경성 바닥’을 취재하는 미시사학자 성기웅에게 '구보씨' 대사의 패러디로 답하려 한다. 부디, 낮춤말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기웅, 부디 좋은 작품 쓰시게. 경성의 생활이 담긴 좋은 작품, 써주시게. 이 경성의 생활. 이 경성의 생활의 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