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은 살아있다 단지 누워 있을뿐…

입력 : 2007.12.06 01:25

클래식 음반산업 절정기 이끈 거장… 내년 탄생 100주년
대표적 녹음CD·지휘장면 담긴 영상물 잇따라 나와

20세기 전반기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명 지휘자 푸르트벵글러(1886~1954)는 자신보다 22세 어린 젊은 지휘자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공개 석상에서는 “아무런 경쟁 의식이 없다”고 하면서도 정작 빈 필하모닉에는 젊은 지휘자가 연주회를 맡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음반사 EMI에는 항의 서한까지 보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는 두 지휘자가 서로의 연습 시간과 스케줄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도 벌였다.

하지만 베를린 필의 수장이던 푸르트벵글러가 1954년 타계했을 때, 후임 자리는 그 젊은 지휘자의 몫이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장례식장에는 이런 화환이 놓여있었다. “베를린 필의 헌신을 담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도이치그라모폰 제공
도이치그라모폰 제공
내년 카라얀(1908~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도이치그라모폰(DG)와 EMI 등 음반사들이 기념 음반과 영상을 쏟아내고 있다. DG는 최근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교향곡 4번, 브람스의 교향곡 2·3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등 전성기 카라얀이 남긴 대표적인 녹음을 10장 분량의 ‘마스터 레코딩스 박스 세트’로 발매했다. 이어 브람스 교향곡 전곡(4곡)과 ‘독일 레퀴엠’, 브루크너 교향곡 8·9번과 ‘테 데움’,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등 카라얀의 지휘 장면이 담겨있는 대표적 영상물과 다큐멘터리 DVD도 내년까지 차례로 내놓을 예정이다. EMI도 카라얀의 첫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비롯한 음원(音源)들을 내년 2월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160여 장 분량의 박스 세트로 내놓을 계획이다.

카라얀은 20세기 후반, 클래식 음반 산업의 절정기를 이끌었으며 때로는 음반 시장의 표준을 스스로 제시했던 지휘자이기도 했다. 1981년 컴팩트 디스크(CD)의 시연회 당시, 소니 사장 모리타 아키오의 곁에서 설명을 지켜봤던 음악인이 바로 카라얀이었다. 곧이어 1984년에는 베를린 필과 함께 디지틀 시대의 첫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현재 베를린 필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이렇게 불평하기도 한다.

“카라얀은 베를린 필 연주회에서 한 해 6차례 정도의 프로그램만 소화한 반면, 매년 평균 24장씩 음반을 내놓았다. 그들이 음반 시장의 포화를 가져왔고,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카라얀은 30여 년간 DG에서만 250장 분량의 음반을 남겼고, 그 이전부터 EMI와 녹음한 관현악과 오페라 음반이 160여 장에 이른다. 후배 지휘자들에게는 ‘야속한 선배’로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카라얀의 해석을 “기름지고 인위적이며 굴곡이 심하다”고 비판하는 애호가들조차도 “우리는 그가 다져놓은 음반 산업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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