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6.12 12:44
[박종규]
제3회 하인두예술상 수상 기념전 ‘비트의 유령들 Spectres of the Bitstream’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제시하는 휴머니티
19일부터 광화문 ACS(아트조선스페이스)



"박종규 작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전환기에서 두 경계의 감성미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동시대적 휴머니티를 한국성의 재해석으로 풀어낸 진취적 미감이 하인두 미학의 현대적 재발견에 비견할 만하겠다"라는 심사평으로 제3회 하인두예술상을 수상한 박종규(59)의 수상기념전 ‘비트의 유령들 Spectres of the Bitstream’이 6월 19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 중구 세종대로 ACS(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 ‘비트의 유령들 Spectres of the Bitstream’에서는 회화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시트지, LED 전구, 빔 프로젝터, AI 등 기술적인 복합매체를 활용한 작가의 작업세계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전시공간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는 작가가 제작한 영상 작품이 빔 프로젝터로 재생되고, 2층 공간에는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는 LED 설치 작품이 전시된다.
박종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지털 노이즈를 작품으로 치환해 ‘감각적 여백의 미’를 구현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시트지를 부착하고 물감칠한 뒤, 일부만 남기고 떼어내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자체가 하나의 디지털 알고리즘과도 닮아있다. 0 아니면 1의 세계. 붙이거나, 떼어내거나. 그 안에서 박종규는 과잉된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생성되는 인간의 사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박종규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국립 에콜데 보자르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특히 대구시립미술관과 후쿠오카시립미술관 개인전, 뉴욕 아모리쇼의 포커스 섹션 선정작가 등 국내를 거점으로 북미와 유럽권까지 비중 있게 활동한 이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러시아 모스크바국립아카데미 미술관과 상트페테르부르그 현대미술관 개인전, 중국 광동미술관 개인전, 멕시코국립미술관 4인전, 러시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대표작가 3인전, 쿠바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고, 사우디, 이집트, 중국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박종규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 차용한다. 회화와 디지털 사이, 점과 선으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완성하며 실재하는 시각적 물질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섬세한 해석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회화, 드로잉, 입체 신작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선구적인 화풍으로 추상미술을 선도한 하인두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계보를 잇는 하인두 예술상 수상자로 지목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저는 현재 만 59세입니다. 하인두 화백이 돌아가신 나이죠. 하인두 화백은 과거 한국 추상을 널리 알린 분입니다. 그전에는 한국에 엥포르멜 운동을 선도했고, 기하학 중심의 작업으로 성과를 이뤘죠. 이후엔 전통 회화를 차용한 추상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그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새로운 미술사적 요소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개인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단단히 가지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 59세에 돌아가신 하인두 화백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림 많이 파는 작가, 유명한 작가보다는, 좋은 작가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작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연작 중 ‘Kreuzen’은 독일어로 ‘교차시키다’, ‘횡단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작가님이 선보여온 연작 ‘Vertical Time’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모든 작업에는 자족적인 생명력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설명이나 배경지식 없이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 대중들에게 설득될 수 있도록요. 사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작품 제목이 철학적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대중과 작가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대중들께 어떤 식으로 작품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일까,하는 부분을 많이 고민했죠. 그래서 제목에 다양한 사유를 담을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대신, 작품과 제목이 명확한 한 가지 연결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시는 분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목과 작품을 연결시키는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모든 작업에는 자족적인 생명력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설명이나 배경지식 없이도 작품 그 자체만으로 대중들에게 설득될 수 있도록요. 사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작품 제목이 철학적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대중과 작가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대중들께 어떤 식으로 작품이 전달되어야 하는 것일까,하는 부분을 많이 고민했죠. 그래서 제목에 다양한 사유를 담을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대신, 작품과 제목이 명확한 한 가지 연결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시는 분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목과 작품을 연결시키는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작가님께서는 ‘쓸모없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노이즈’라는 개념에 대입해 작업을 이어오셨습니다. 이렇게 소외되거나 배제된 요소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노이즈는 단지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 과거에는 진실인 줄 알았는데 현재 거짓이 된 것, 혹은 그 반대도 있고요. 세상을 살아오며 경험을 하다보니 절대적인 건 없더라고요. 이런 점이 노이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거 대상이 아닌 미술적 가치를 품은 무언가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죠.
사실 미술적으로 보면, 노이즈를 제거 대상으로 여기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아름답습니다. 노이즈가 디지털 환경이 만연한 현재 갖는 의의가 있죠. 따라서 미술은 언제나 시대를 반영해야한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보면 노이즈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분명 회화지만, 비물질적인 세계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탈회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실험과 철학적 고민 끝에 작품이 탄생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작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형식적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맞는 표현 방법은 무엇일지 항상 고민합니다. 시대 속 모든 상황 속에서 특히 내 눈에 보이는 것, 또는 꼭 반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 형식 안에서는 많은 변주가 가능하죠.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동시대적 현상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미술사적인 입장입니다. 미술은 아주 역사가 긴 예술 장르인데 그 중에서도 내 작품은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술의 역사가 진행되며 흔히 들어봤을 법한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팝아트 등의 미술적 흐름이 있었죠. 그러니까 빛의 발견이 미술사를 바꾼 것처럼 기호적인 요소 역시 표현양식에서 중요합니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서는 미술의 주제가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노이즈나 디지털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는 사회적인 입장입니다. 앞서 말했듯 노이즈는 불필요하기 때문에 제거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이 세상은 필요로만 작동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실수, 말장난, 배려 같은 인간적인 요소는 사실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즐겁게 하죠. 필요가 요구되는 정형화된 세상에서 불필요한 것은 어쩌면 낭만적인 일탈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번 출품작 중 드로잉 작업도 눈길을 끕니다.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드로잉 작업은 2016년도쯤 시작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때 ‘이러한 방식이 왜 존재하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드로잉 작품은 기하학을 바탕으로 작업했습니다. 기하학이라는 건 필요성을 완벽히 증명해 내야 합니다. 이집트 문명이 시작될 때, 나일강이 홍수가 나서 범람하고 난 뒤 논의 경계가 애매할 때, 하늘의 별자리를 바탕으로 다시 구역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원인과 결과, 출발선과 목적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하학적인 영향, 가장 기본이 되는 철학을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드로잉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또한 올 하반기에 이집트, 중국 등 해외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이 예정돼 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할 계획이신가요?
우선 중국 전시는 광동미술관에서 열리는데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하는 실내 전시라서 회화 작품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집트와 사우디에서 열릴 전시입니다. 사막을 이용해 전시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야외 공간에서 전시 경험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특히 사우디에서는 LED 전구 다발 수만 개를 이용한 영상 작품을 선보입니다.
우선 중국 전시는 광동미술관에서 열리는데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이라고 합니다. 미술관에서 하는 실내 전시라서 회화 작품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집트와 사우디에서 열릴 전시입니다. 사막을 이용해 전시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야외 공간에서 전시 경험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특히 사우디에서는 LED 전구 다발 수만 개를 이용한 영상 작품을 선보입니다.



─하인두 예술상은 국내에서 3년 이상 활동한 만 59세 미만의 한국 미술가를 대상으로 선정합니다. 하인두 화백이 59세에 작고한 것에서 비롯해 수상 작가들이 59세 이후에도 더욱 왕성한 작업 활동을 펼쳐나가 주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0년 뒤의 선생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이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이해나 판단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디지털 매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그 공간에 누가 먼저 입장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형식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순간 1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60대에 접어드는 제가 20대의 감수성을 갖는다면 그것 또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20대 역시 60대의 판단이나 삶의 기준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나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이 시대를 작품에 접목시킨다는 시대정신을 갖는다면 70살 같은 작품도, 10살 같은 작품도 모두 가능합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시각을 갖길 바랍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제가 생각할 때 제 작품은 화면 상으로 구체적인 상징이나 의미를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떤 의도로 이런 작업을 하게 됐는지, 그 배경이 더 중요하죠. 앞서 말한 디지털 관련 내용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람객께서 제 작품 자체만 놓고 어떠한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것 또한 맞습니다. 제가 탄생시킨 작품이지만 완성된 이후에는 제 손을 떠났으니 각자가 전시장에서 그것을 온전히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