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와 기괴한 짐승 하나, 수묵화처럼서 있구나!

입력 : 2007.09.06 09:51

연극 '코끼리와 나'

태종실록에 “일본이 조선에 코끼리 한 마리를 바쳤고, 이는 일찍이 없었던 동물로 사복사(司僕寺)에서 기르게 하였으나 이듬해에 이우 공조전서(판서)가 이를 추하게 생겼다고 비웃으며 침을 뱉었더니, 성난 코끼리가 그를 코로 말아 땅에 쳐 죽이는 사건으로 재판이 열려 코끼리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제는 이 흥미로운 문장에 주목했고 서둘러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쌍달’이라는 인물을 만들었고 이는 곧장 그의 절친한 동료이자 믿음직한 선배인 오달수의 품에 안겨졌다. 태종 11년, 조선 땅에 들어온 해괴한 동물인 코끼리 흑산, 그리고 한 남자. 꽃바람에도, 눈바람에도 함께 걷는 신앙처럼 고결하고 동화처럼 순수한 이들의 진귀한 이야기인 연극 '코끼리와 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 짐승, 코가 긴 걸 보니 코길이가 아닐까요?


조선 땅에 몸통은 소와 같고 귀는 구름장만한 동물이 성큼 들어왔다.코끝으로 물건을 낚아채고, 흥분하면 둔기 같은 다리로 사람을 깔아뭉개고, 먹어치우는 콩과 풀이 다른 짐승의 열배는 족히 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유용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녀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국의 검은 속내가 짙게 깔린 예물이라 쉽사리 죽이지도 못하니 조선으로선 진퇴양난의 순간! 그리하여 이 집채만한 짐승을 길들이기 위해 소도둑 쌍달이 나섰다. 얼떨결에 나라의 부름을 받은 그도 난생 처음 보는 흉측하고 거대한 짐승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털이 검고 덩치가 산만하여 흑산(黑山)이라 불리게 된 코끼리는 설상가상으로 사람까지 죽인 통에 살인마로 낙인찍혀 유배 길에 오른다. 흑산의 조련사로 책봉된 쌍달이 섬에 함께 갇히는 것은 명약관화인 셈. 처음부터 너무 꼬여버린 쌍달과 흑산, 그들은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함께 있기에 이 얼마나 즐거운 작업인지.


쌍달 역할의 오달수는 그 이름 석 자 만으로도 무한한 신뢰를 형성하는 배우이다. '올드 보이',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괴물' 등 그의 필모그래피를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해제 연출은 '흉가에 볕들어라', '육분의 륙', '다리퐁 모단걸' 등 의외의 소재를 이야기로 끄집어내는데 타고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조선 최초의 코끼리가 허연 눈발이 몰아치던 숲길도, 억새풀이 장관을 이룬 능선도 넘실대며 걸을 수 있는 건 20년 가까이 예술적 동지애를 키워 온 두 사람의 열정과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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