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음향감독 박임서

음악은 물론이요, 건축과 전기에 모두 정통해야 하는 직업이 바로 ‘음향감독’이다. 때에 따라선 클래식음악이나 오페라에 대한 깊은 조예를 요구하기도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음향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음향감독 박임서. 올해로 경력 18년차인 프로 중의 프로다. “서울시 공무원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했어요. 근무지를 세종문화회관으로 지원해서 합격했고, 때마침 빈자리가 난 음향 팀에 발령 받았죠. 그게 운 좋게 적성에 맞아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에요.” 마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 하듯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그. 오히려 그렇듯 자연스레 피어난 열정이 그를 이곳에 18년이나 머물게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곳에서만 일하다 보니 가끔은 시야가 좁아지는 기분도 들게 마련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름의 전통과 역사가 있는 이곳에 자식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워낙 오래된 극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많아요. 정해진 틀 안에서 가능한 것만 변화시켜야 하니까요. 대신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장점화 하려고 노력하죠. 리모델링하고부터는 상당부분 개선되기도 했고요. 특히 전기음향 쪽은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외국 엔지니어 분들도 오셔서는 ‘Perfect!’를 외치고 가곤 하니까요.” 잘하면 본전이고 실수하면 바로 티가 나는 분야가 음향이라며 그는 잠시 직업적인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음향은 조명이나 무대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 역사가 짧다보니 인식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리허설 때도 조명이나 무대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지만, 정작 음향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고. 음향은 주관적인 느낌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분야인지라 관객들의 입맛을 일일이 맞추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출연자 컨디션에 따라 어제 소리, 오늘 소리 다르고 심지어 그날 날씨나 관객 수도 영향을 미쳐요. 개인의 취향도 무시할 수 없죠. 좋아하는 음식이 모두 틀리듯 선호하는 사운드도 제각각이기 마련이니까요. 또 어르신들은 소리가 너무 작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너무 크다고 할 때도 있어요. 나이에 따른 청력 차이 때문이죠.(웃음)”
피할 수 없는 돌발 상황도 있다. 일례로 오케스트라가 예정에 없던 곡을 갑자기 추가하기라도 하면 음향 팀은 당장 채널을 확장하고 모든 계산을 다시 해야만 한다. 성악가가 고정된 마이크를 벗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심각한 비상사태 중 하나. 이처럼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엉망이 되어버리는 섬세한 분야가 바로 음향이기에, 그는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귀를 쫑긋거리며 무대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공연에 맞는 전체적인 소리의 콘셉트를 잡는 것이 음향 디자이너의 몫이라면,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은 음향 엔지니어, 그걸 실현하는 것은 음향 오퍼레이터의 몫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만해도 한 사람이 구분 없이 전 분야를 소화해야만 했다고. “그래도 그때 이일 저일 배워뒀던 게 지금은 많은 도움이 돼요. 결국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일들이니까요. 요즘은 겉만 보고 음향 일에 도전하려는 친구들이 많죠. 그때마다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이 일을 하려면 주위 사람들한테 피해를 많이 줘야 한다고요.(웃음) 일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소원해질 수 있다고 은근히 으름장을 놓곤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공연이 다가오면 끼니를 제 때 못 챙겨먹는 일도 다반사고, 심할 경우 한 달에 한번 집에 들어가는 일도 있다.
둘째인 쌍둥이 아기들을 아내 혼자 번갈아가며 뒤집어 주느라 지금도 아이들 뒤통수가 납작하다며 멋쩍게 웃는 박임서 감독. “좋은 소리란 관객들이 아티스트와 한 마당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받아 적으며, 그가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음향감독으로 무대와 객석을 마당처럼 이어주길 바래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