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은 너로부터 시작되었다

입력 : 2007.08.06 08:37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

가족의 비극은 춘구의 탄생에서 비롯됐다는 의미심장한 제목. 중국 대륙에서 행해진 나비의 어설픈 날개 짓이 미국의 폭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만큼이나 불확실한 이론처럼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아니 그러면서도 춘구를 향해 성급한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순 없다.


2007년 헤화동 1번지 4기동인 페스티벌 '미스터, 리가 수상하다'의 참가작인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은 서민들의 소소한 일과와 절룩대는 일상을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한길 연출의 작품이다. 바야흐로 일구팔공, 대체 무슨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익숙한 불행


끈적거리는 날씨에도 초코파이 하나만 쥐어주면 군말 없이 앉아 있던 정신지체 장애자 순희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밤, 가족들 모두가 집을 비운 사이 문 밖을 나섰다가 뺑소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엄마 정자는 25살에 남편을 만나 아들 춘구를 낳고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중동으로 돈 벌러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젖먹이를 3년간 혼자서 키우던 그녀는 두 번째 시집을 가게 되고, 새 남편의 딸 3명을 함께 돌보게 된다. 첫째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둘째마자 허망하게 빗길에서 보냈으며, 슬픔을 수습할 틈도 없이 목사의 아들과 혼인을 목전에 앞둔 딸 선희는 결혼이 연기됐음을 알려온다. 마치 예정된 불행들이 일렬로 늘어서 순서대로 그녀 앞에 당도하는 것처럼.


불행은, 불행히도 반복된다.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은 불행이란 그들 가족의 혈류 속에 과거부터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라고 말한다. 춘구가 태어났던 1980년, 혹은 정자가 열아홉의 나이에 서울에 올라 왔던 그 시절보다 더 까마득한 옛날부터. 심지어 순희의 죽음은 춘구가 고등학생 시절 만났던 지윤이라는 여자, 선희의 남자친구인 지환과의 묘한 관계 속에서 파생된 사건임이 밝혀진다. 춘구는 불행의 원천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굳이 들춰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희망이란 태생적으로 가질 수 없는 단어인가.


죄와 벌, 일상다반사


연출가 김한길
일구팔공하면 사람들, 으레 광주 항쟁을 떠올린단다. 춘구의 탄생을 말하고자 했을 뿐인데. 한 사람의 탄생은 그야말로‘일대 사건’인 것을 망각한 채 살아오진 않았는지.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한길은 말한다. “사람의 출생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주변과 얽혀 있잖아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또 춘구와 옛 여자 친구 지윤과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  19살, 순례가 살아있다면 대략 80살 정도로 됐을거고. 그래서 자연스레 198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완성된 거구요.” 살면서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의 죄를 짓는 우리들, 그는 법의 심판이 아니라 그 죄들이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 처벌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단다. 예를 들어 죄 값으로 정자를 모시게 되는 지환의 모습, 그것은 눈물겨운 효심이나 가족 간의 화해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 절차일 뿐이다. “극중에선 용서니, 양심이니 그런 말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게 해요. 춘구네 가족은 또 그렇게 살아갈 뿐이라는 것. 제한된 선택의 굴레 속에서, 자신이 벌여놓은 선택의 결과대로.” 그의 말이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지 싶다가도 혹여나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것은 아닌지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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