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썸걸즈 - 나쁜 남자의 이별 공식

입력 : 2007.07.25 10:40

“나…결혼해. 그 전에 한번만 만나.”


여기 나쁜 남자가 하나 있다. 헤어질 때 말 한 마디 없이 증발해버리더니, 10년이 훨씬 지나 찾아와선 “나…결혼해. 그 전에 한번만 만나.” 라고 전화한다. 흘러간 옛사랑에게 면죄부를 받고자 예전의 그녀들을 차례로 호텔방으로 불러들이는 이 남자. 이 나쁜 남자의 과감한 이별 공식이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는 연극 '썸걸즈'는 여자와 남자 사이에 이별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특별하고 싶었던 네 여자의 속사정


유명한 영화감독인 강진우. 직업도 외모도 매력적인 이 남자, 천연덕스럽게 보고 싶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예전에 그가 사랑했었던ㅡ사랑했다고 기억하고 있는ㅡ여자들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한다. 교회에서 만났던 첫 사랑에서부터 그저 하룻밤을 위해서 만났던 두 번째 여자, 밀회를 나눴던 세 번째 여자, 그리고 유능함에 기댔던 네 번째 여자까지. 각기 다른 연인을 만났지만 이 남자 일관되게 이별의 방식은 단 한 가지, 말없이 도망가기다. 그리고 이어진 오랜만의 재회, 남자의 이별 공식에 상처 받은 여자들의 속사정이 낱낱이 공개된다. 어떻게 여자들의 심리를 이토록 세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힐 정도로 '썸걸즈'의 대사들은 20, 30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디테일하다. 관객들의 웃음을 터뜨리고 진우에게 날리는 따귀 한 대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면서도, 한 편으론 슬쩍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던 여자들의 소박한 속사정이 슬며시 드러나는 호텔 방 밖의 풍경은 이 연극의 포인트. 여자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외로운 호텔 복도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바라는 무언가를 안타깝게 보여준다.


벗어나고 싶었던 한 남자의 변명


네 여자들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여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면, 그저 겁이 나서 그랬다고 일관하는 진우의 대답은 많은 남자들이 박수치며 공감하는 대사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사연이 너무 많았던 강진우의 천연덕스런 바람기에 야유를 보내긴 하지만, 한 편으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남자의 은밀한 욕망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그 욕망의 반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남자로 일관하는 강진우역의 이석준은 완벽하게 여자들을 홀리고 또 울린다. 잘생기고 매끈한 남자의 유혹은 쉽게 뿌리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탓이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헤치고 그들에게 각각 면죄부를 씌어주려는 듯하지만, 결국 그들의 가장 깊숙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연극 '썸걸즈'. 원작자 닐 라뷰트(Neil Labute)의 극작력은 물론이거니와 연극 '아트'와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로 인물들 간의 심리 조합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황재헌의 각색과 연출력도 대단하다.


남자와 여자, 그 둘이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크게 이슈화된 적이 있다. 제목대로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들은 금성에서 왔기 때문에 환경적인 영향에 의해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이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이 만났을 땐 신기하게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았지만 어느 날 그들이 지구로 왔을 때 지구의 환경의 영향으로 이상한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자신들이 원래부터 다른 행성에서 왔고,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충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연극 '썸걸즈'도 이처럼 이성간의 차이점을 화두로 삼는다. 다만 책보다 좀 더 과감하고 유쾌하게 남녀간의 사랑의 줄다리기를 그려낸다는 것이 차이랄까. 마지막에 전화기를 부여잡고 흐느끼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강진우의 속마음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이 나쁜 남자의 고백을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사진 / 동숭아트센터 시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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