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같은 연극 연극 같은 연애

입력 : 2007.07.19 00:25   |   수정 : 2007.07.19 03:04

리뷰: ‘그 자식 사랑했네’
실제 연인… 연출력에 재미까지 더해

미영(김지현)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칠판에 쓴다. ‘정태야.’ 연인 정태(민준호)에게 “내 이름 부르는 니(‘너’의 경상도 방언) 목소리도 듣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태는 말이 없다. 야속하게 시간은 흐르고, 물글씨는 말라 지워진다. 이별이다.

이렇게 닫히는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추민주 작·이재준 연출)는 올해 대학로의 수확이라고 할 만하다. 문학적이면서도 더없이 연극적이고, 감정의 여러 모서리를 건드리면서 대중적인 재미까지 있다.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유명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작품. 짧은 워크숍 형식으로 22일이면 막을 내린다는 게 아까울 정도다.

실제로도 연인 사이인‘그 자식 사랑했네’의 커플 김지현(왼쪽)과 민준호. /간다 제공
실제로도 연인 사이인‘그 자식 사랑했네’의 커플 김지현(왼쪽)과 민준호. /간다 제공

‘그 자식…’은 시인을 꿈꿨던 국어강사 미영과 임용고시 재수생인 영어강사 정태의 사랑 이야기다. 연극은 극장을 보습학원 강의실로, 관객을 중학교 2학년생들로 바꿔놓은 채 인사까지 받아먹고 시작한다. 관객 중 한 명에겐 학원장·과학선생·웨이터 등 1인7역이 맡겨진다. 무대에 칠판과 의자 두 개만 올려놓은 이 연극은 칠판을 360도 돌려가며 강의실·호프집·대학교·여관·골목길·버스·기차 같은 공간으로 뻗어나간다.

칠판엔 처음부터 ‘Feel so good’ ‘버스’ ‘자고 가자’ ‘나, 너한테 뭐니?’ 등 이 2인극의 15개 장면이 이정표처럼 새겨져 있다. 미영이 잠깐씩 정태를 돌덩이로 만들고 극에서 빠져나와 해설할 때, 관객은 그녀 그리고 이 연극의 청춘사업 상담자가 된 기분이다. 칠판 앞에 나란히 서서 이불로 여관 침대를 만드는 상상, 이야기에 살점을 보태는 분필 그림들(맥주잔, 티켓, 컴퓨터…), 그것들에 집중시키는 조명도 정겹다.

둘은 웃음�눈물�침묵이라는 사랑의 3단계를 밟아나간다. 애정 장면엔 노골적인 대사와 농도 짙은 몸의 언어가 출렁인다. 다툴 땐 철썩 뺨 때리는 소리가 들리고, 헤어질 땐 객석 공기가 더 무겁다. 실컷 웃다가 숨죽이는 관객 풍경은 이 드라마의 흡인력을 증명한다.

두 배우는 실제 연인 사이라고 한다. 이 연극은 공연을 빙자한 연애, 혹은 연애를 재구성한 연극 같다. 극장 안팎의 사랑이 오버랩되는 순간이 거칠지만, 믿음직한 연출력과 함께 지금 대학로에서 가장 재미있는 연극이다. 22일까지 대학로 아트홀 스타시티. 8월 1~2일엔 밀양연극촌으로 무대를 옮긴다. (02)744-4331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하이라이트 동영상.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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