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사로잡은 중년여성들의 열정

입력 : 2007.07.16 09:33

뮤지컬 '메노포즈'

50대에 접어든 여성들에게 숙명처럼 찾아오는 폐경. 지독한 생리통과 불쾌한 습기로부터 해방된 그녀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기보단 패배의 쓴 잔을 들이킨다. 더 이상 육체적으로 ‘진짜’여자가 아니라는 무력감과 상실감, 폐경 즈음에 찾아오는 안면홍조, 식은 땀, 허리통증, 요실금, 기억력 감퇴, 불면증까지. 이토록 가혹한 변화를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폐경기를 뜻하는 뮤지컬 <메노포즈>는 폐경 후 노년기로 이행되는 과정에 놓인 여성들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유쾌하게 노래하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로 살아온 중년의 여자, 이제야 그녀들의 빛바랜 꿈들이 조금씩 숨을 쉰다.  


가슴 속에 불구덩이 하나를 껴안고 한 여름 거리를 활보하는 기분이랄까. 연신 흘러내리는 땀에 속옷은 축축하게 젖어오고,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폐경기의 여자는 캄캄한 밤, 소스라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야! 나 이제 더는 여자가  아닌 거야?”  


폐경으로 다시 태어난 여자들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메노포즈>,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여성의 폐경을 다룬 이 작품의 성공을 과연 몇 명이나 예상했을까. 백화점의 란제리 할인 판매장에서 옥신각신하며 첫 대면을 하게 된 네 명의 여성. 폐경으로 인해 결코 달갑지 않은 변화를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은 각자의 고통쯤으로 여겼을 증상들은 하나 둘 털어 놓기 시작한다. 뮤지컬 넘버조차 ‘갱년기, 열병, 땀 흘려, 잠을 못자’ 등으로 채워져 있는 <메노포즈>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중년여성들의 에피소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치 그 동안 “아줌마들은 다 저렇지 뭐! 건망증 심하고, 괜히 짜증내고, 살쪄서 땀이나 흘리고” 라고 단정지어버리는 다수의 몰이해를 한 방에 날려버리려는 듯.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제법 익숙한 60-80년대의 팝송에 노랫말을 입혀 공연장을 찾은 중년 관객들의 화려했던 ‘청춘’ 을 떠올리게 하는 <메노포즈>는 2005년 국내 초연 당시 전수경, 박해미, 이경미, 이윤표 등 실력파 중견 배우들의 활약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2006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들을 찾은 <메노포즈>의 캐스팅을 들여다보니 실력에 있어서 가히‘믿음’직한 배우들이포진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활발히 활동 중인 개그우먼 이영자를 필두로 홍지민, 조갑경, 김선화 등이 전업주부, 한물간 연속극 배우, 웰빙 주부, 전문직 여성 등을 맡았다. 더불어 배우 전수경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데 그녀의 과감한 도전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위기의 중년들에게 또 한 번 자극이 되지 않을까?


중년의 반란_더 이상 구차하게 살진 않을 거야!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中 일부


학창 시절 그토록 영리하고 꿈 많던 소녀들이 남편의 감자 국을 끓이기  위해,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집이라는 울타리에 머물고 있음을 한탄 하는 어느 시인의 목소리가 퍽이나 인상 깊다. 


엄마라는 족쇄에 얽매인 채 떠밀리듯 살아온 여자들의 삶은 폐경을 기점으로 어정쩡해진다. 더 이상의 생식 기능을 상실하고, 할인마트에서 덤으로 받은 물병마냥 집안 한 구석을 의미 없이 차지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으로 일상을 버틴다. 이른바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다시 한 번 뒤집어 쓴 그녀들에게 삶은 노여움으로 찾아오고, 연신 ‘가난한’ 기침을 토해낸다. 하지만, 이제부터 헛된 슬픔과 과장된 두려움은 과감히 떨쳐내고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누구도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자신을 위해.  


 


누구도 날 막을 수는 없어


연출가 겸 배우 전수경 인터뷰


전수경, 그녀는 결코 흐느껴 울 일도 고통의 칼끝에 베어 아파 할 일도 없을 것만 같다. “우리가 속이 아프면 위장약을 먹고 한결 가벼워지듯, <메노포즈>를 통해 억눌려 있는 중년들에게 버틸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통과 고민에 접근하고, 그것이 해소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늦기 전에 연출에 도전해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휘해 보고 싶다는 그녀.“ 사실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확실한 분업화가 안 된 시점이라, 배우들이 같이 번역도 하고, 개사도 하고 여러 가지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그랬기에 연출이란 직업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또 주변에서도 많이 권했고, 특히나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이기에 결심을 하고 연출에 뛰어들었어요. 무모하다 할지라도, 나 자신에게 주는 새로운 기회인 거였어요. 내게도 전환이 필요했던 거니까. 근데 생각보다 목을 많이 써서, 무대 올라 갈 일이 걱정이네요(웃음) ”


온 가족이 함께 <메노포즈>를 관람하면서 그 동안 중성적인 존재로 치부되어 온 어머니를 여성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는 그녀의 밝은 소망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녀 역시 지금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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