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한 ‘어른들의 동화’

입력 : 2007.07.10 00:15   |   수정 : 2007.07.10 02:58

리뷰… 뮤지컬‘댄싱 섀도우’
울창한 숲 재로 변하는 장면 에릭 울프슨 음악등 환상적
비유·상징 많아 관객 부담 1% 부족한 재미 보강 필요

화염 방사기를 든 군인들이 숲으로 들어간다. 무대는 암흑으로, 객석은 침묵으로 무거워진다. 숲 깊은 곳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붉은 불길. 뿌연 연기가 무대 밖으로 흘러 넘치는 순간, 공중으로 번쩍 나무들이 들어올려진다. 남은 건 까맣게 타버린 밑동과 재, 여인들의 절망이다.

8일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초연한 뮤지컬 ‘댄싱 섀도우’(Dancing Shadows)는 기대했던 산불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고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그러나 거기서부터 새 길을 낸다. 비극인 원작과 달리, 파워풀한 합창 “새로운 태양 떠올라 떠올라/ 새로운 생명 자라나 자라나/ 새로운 태양 새로운 생명/ 새로운 새로운 생명~”으로 닫히는 ‘댄싱 섀도우’는 다 타고 다 잃은 자리에서 희망을 본다. 정서가 맑아지는 체험을 한 관객들은 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힘줄처럼 단단하게 뻗어 올라간 나무를 그려 넣은 무대막이 열리면, 둘레가 3~4m 되는 거목들로 가득 찬 숲이 보인다. 내전(內戰)으로 낮엔 태양군이, 밤에는 달군이 점령하는 마을 콘스탄자엔 나무들과 말하는 숲의 수호자 나쉬탈라(김보경), 도시를 동경하는 신다(배해선), 태양군과 달군을 교묘히 이용하는 촌장 마마 아스터(김성녀) 등 여자들밖에 없다. 목수였던 탈영병 솔로몬(신성록)이 들어오면서 나쉬탈라·신다와 삼각관계가 엮어진다.

‘댄싱 섀도우’2막에서 군인들과 여인들이 벌이는 축제. 다음 장면에 숲은 재가 된다. /신시뮤지컬 컴퍼니 제공
‘댄싱 섀도우’2막에서 군인들과 여인들이 벌이는 축제. 다음 장면에 숲은 재가 된다. /신시뮤지컬 컴퍼니 제공

‘죽음과 소녀’로 유명한 아리엘 도르프만이 쓴 대본은 우화(寓話)적이고 비유와 상징이 많았다. 화려하고 쉬운 뮤지컬에 친숙한 관객에겐 불편하고 때론 고통스러운 퍼즐 맞추기였다.

하지만 미로 같은 숲을 뚫으면 새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댄싱 섀도우’는 남자·여자, 빛·어둠, 태양군·달군, 정신·물질, 전통·현대처럼 상충하는 요소들이 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림자는 ‘잃어버린 반쪽’ ‘결핍’을 뜻한다.

공연에서는 에릭 울프슨의 음악이 돋보였다. “그림자와 함께 춤추고 있네/ 그림자와 함께 꿈속을 걷네~”로 오래 귓바퀴에 맴도는 ‘그림자와 춤을’, 반주도 생략한 채 드라마틱한 긴장을 만드는 ‘남자가 필요해’, 나쉬탈라와 신다의 서정적인 이중창 ‘그 길을 따라’, 솔로몬의 음색이 달콤한 ‘답없는 질문들뿐’…. 때론 서사적으로 이야기를 굴리고 때론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찍어내는 노래들이 이 우화를 울창한 숲으로 키워냈다.

2막에서 배해선이 ‘이 끔찍한 세상’을 불렀을 때 큰 박수가 터졌다. ‘미스 사이공’에 이어 주인공을 맡은 김보경, 극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김성녀, 1인2역의 성기윤이 호연을 보여주었고, 마을 여인들과 죽은 영혼(나무)들이 빚어낸 앙상블도 아름다웠다.

극중에서 나쉬탈라 등 몇몇만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듯이, ‘댄싱 섀도우’에 푹 빠져 감동할 관객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1막의 긴장이 좀 유연해져야 하고 극으로서의 재미가 더해져야겠지만,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증명한다는 점에서 이 뮤지컬은 값지다.

이날 초연은 고 차범석의 부인인 박옥순 여사, 이명박 전 서울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관람했다. 공연 직후 무대에 올라온 도르프만과 울프슨은 “이 뮤지컬은 차범석이 준 선물,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했다. 2년 전 영국에서 ‘댄싱 섀도우’ 워크숍을 본 차범석은 “시집보낸 딸년(‘산불’)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8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588-7890
8일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된 뮤지컬 '댄싱 섀도우'. 주제가라 할 수 있는 '그림자와 춤을', 나쉬탈라와 신다의 이중창 '이 길을 따라'가 나오는 장면.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제공한 영상입니다. /박돈규 기자
빙판공연(1)-상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 /박돈규 기자
빙판공연(2)-볼쇼이 아이스쇼.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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