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봅니다. 한 송이 해어화(解語花)를 피우기 위해, 그리고 그 꽃을 보기 위해 이다지도 많은 계절이 지났습니다.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뜻의 뮤지컬 <해어화>가 마침내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틔워내기 위해 온 우주와 대지는 영겁의 시간만큼을 쏟아 붓습니다. 또한 한 편의 예술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쓸모 있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해어화>는 지상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오묘한 빛을 발하며 어지러이 피어있는 꽃잎 한 장을 기어코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녹녹치 않은 사연을 머금은 듯한 그 꽃을 마주하니, 돌연 쓸쓸해지는 건 왜일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해어화>이기에 그들이 모였다!
뮤지컬 <해어화>는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네 명의 소녀가 조선 최고의 기생학교에 입학해 혹독한 훈련을 거치면서 일패(一牌) 기생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거할 수 없는 상처와 무수한 아픔을 딛고서 예능과 교양을 겸비한 직업 예인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해어화>. 배우 허준호가 처음으로 제작하는 뮤지컬이기도 한 이 작품은 김민우의 ‘사랑 일뿐야’, 조관우의 ‘늪’등 주옥같은 곡들을 쓴 하광훈이 작곡가로 참여하였다. 또한 작품성 있는 연극과 일생을 벗해온 김영환 연출, <마리아 마리아>의 최무열 음악감독, <에비타>의 김기영 음향감독 등이 든든하게 작품을 지키고 서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록이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여 뮤지컬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먼저 열정이 넘치는 윤복희가 탱그리별에서 온 요정 빵코 역할로 극을 이끌어가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이정화, 김영주, 또한 주원성, 조승룡 등이 모두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친다. 더불어 김수용, 홍경인, 정선아, 홍승아 등 무대 위에서 즐길 줄 아는 배우들이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과 야망을 노래한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해어화>
친구의 모함으로 민중봉기의 주모자로 몰려 참수를 당한 소연의 아버지, 가족을 몰살하라는 어명을 피해 달아난 소연과 그녀의 몸종 달래(은향)는 얼떨결에 기생학교인 예기원에 입학하게 된다. 으뜸 기생이 되면 임금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가족의 누명을 풀기 위해 소연은 악착같이 훈련에 임한다. 한편 예술서당에서 우연히 산하를 만나게 된 소연은 그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고 은향도 그에게 연정을 품는다. 하지만 소연은 산하가 아버지를 죽인 자의 아들임을 알게 되면서 사랑 대신 증오를 택하게 되는데, 이들의 어긋난 사랑은 과연 어떻게 마무리 되는 것일까?
언제나 보장된 길을 갈 수는 없다. 아니 때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는 수십억의 초침이 필요키도 하고, 섬광처럼 번뜩이는 느낌만을 요할 때도 있다. 결과는 결국 각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작품이기에 자신의 열정과 땀을 기꺼이 소비하는 <해어화>의 세 배우를 만나보자.
겸손한 친화력을 지닌 산하 김수용
산하는 당대 최고 권력가의 아들이지만, 권력의 부조리함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이에 대한 반감을 지닌 인물이에요. 때문에 시대의 모순에 휩쓸리지 않고 변혁을 꿈꾸는 자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사람을 못했었는데(웃음) 오랜만에 정상적인‘사람’역할도 하고, 가슴 저릿한 사랑도 실컷해 봐서 기분이 너무 좋네요. 그리고 <해어화>라는 작품에 정말 다양한 배우들이 참여하는데, 제게는 여러모로 많은 학습의 기회가 되고 있어요. 각각이 지닌 장점들을 보면서, 제가 갖추지 못한 점들을 배우게 되고 더불어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이 참여하는 작품에 제가 절대로 누가 되지 말아야 겠다는 겸손함까지 절로 생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겸비한 하광훈 선생님의 뮤지컬 넘버들을 관객들이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해요. 연습을 하면서 작곡가가 고심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거든요.
작품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효재 이정화
예기원의 교장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여자인 효재 역을 맡았어요. 기생이 되겠다고 들어온 풋내기들을 멋진 여성으로 만들어내는 인물이죠. 그동안 라이선스 작품에 많이 참여했었는데, <해어화>가 창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게 충분한 의미로 다가왔어요. 처음이라 미흡한 점도 많고, 고쳐야 할 부분도 있다는 점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연습에 임하고 있어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의 그 느낌을 전 믿어요. 그건 함께 하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존재만으로 큰 역할을 하고 계시는 윤복희 선생님이나, 주원성, 조승룡, 허준호 대표 등이 있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하는 모습, 기대해 주세요.
주어진 역할과 사랑에 빠진 사비향 김영주
<해어화>는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를 할 때 제의를 받았던 작품이에요. 사실 기생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트렌드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반신반의 하며 대본을 접했는데, 시시한 작품이 아니더라고요. 지나치게 사랑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고, 삶을 스스로 성취해나가는 여성들의 성공을 다뤄서 박진감도 넘치고요. 또한 화려한 면만을 부각했던 기존의 기생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일패, 삼패 기생에 대한 정의 등 그동안 몰랐던 점들을 배울 수 도 있고요. 더군다나 저는 제 역할에 애착이 너무 많이 가요. 비록 비중은 적은 인물일지언정, 그녀의 대찬 성격이 너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궁중에서 춤을 추며 곱게 살아갈 수 있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내려놓고 민중의 편에 설 수 있는 용기, 그 점이 절 매료시켰어요. 무엇보다 기존에 없던 인물이고 그렇다면 ‘이 여자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캐릭터구나’라는 생각에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해어화>의 연습실 분위기가 정말 너무 좋아요. 배우들이 모두 끈끈한 정으로 뭉쳤어요. 아무래도 창작에 대한 주변의 우려와 불신이 저희를 더욱 하나로 만드는 것 같아요. 늦게까지 연습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아침에 눈을 뜨면 얼른 연습실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어서 이 감동과 환희를 관객들과 충분히 교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