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해. 그 전에 한번 만나

입력 : 2007.06.27 09:11

연극 <썸걸(즈)>

전화가 걸려온다. 슬며시 핸드폰 화면을 본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다. ‘누굴까? 택배? 아니, 최근에 인터넷 쇼핑 한 것도 없는데.’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생기는 괜한 두근거림으로 전화를 받는다. 참, 괜히 목소리도 한번 가다듬어 본다. “여보세요?” “.............” 저쪽에선 말이 없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정적이 흐른 후 수화기 저편에서 나른하고도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야…….” 그가 ‘나’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그가 말하는 ‘나’가 누구인지를 재빨리 알아차린다. 아니, 알아차린다기보다는 온몸으로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결혼해. 그 전에 한번만 만나.” 연극 <썸걸(즈)>의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some은 단수명사에 붙으면 ‘어떤, 무슨’을 나타낸다. 복수명사에 붙으면 '몇몇의' 라는 뜻이 된다. 그러니까 some girls 하면 몇몇 여자들이라는 뜻. 하지만 some girl이라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구어에서 ‘특별한, 굉장한’이라는 뜻을 갖는 이 ‘some+단수명사’에 의해 some girl은 단순히 ‘어떤 여자’에서 그치지 않고, ‘특별한 여자’라는 뜻을 갖게 된다.

이 연극 <썸걸(즈)>는 한 남자가 진짜 사랑한 특별한 여자인 ‘some girl’과 단지 남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몇몇의 여자들인 some girl‘s’에 관한 얘기다. 그래서 이 연극의 제목은 썸걸(즈)다. 결혼을 앞두고, 과거 애인들을 만나는 여행을 시작하는 남자와 ‘some girl’일 수도 ‘some girls’일수도 있는 그녀들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이건 당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젊고 아름다운 약혼녀와 결혼을 앞두고 예전에 만났던, 동시에 배반했던 여자들을 호텔방에서 한 명씩 만나는 어이없는 행동을 감행하는 주인공 강진우. 매력적인 겉모습 뒤에 비겁한 속내를 감추고 끝까지 여자들을 이용하는 진짜 ‘나쁜 놈’이다. 이 ‘나쁜 놈’과 그녀들 사이에서 어떻게 여자들은 웃게 만들고 남자들은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연극 <썸걸(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는 남녀사이를 정면으로 다루는 원작자 닐 라뷰트의 재주다. <썸걸(즈)> 대본을 읽은 여배우들은 극 중 캐릭터 가운데 한 명은 꼭 자신처럼 느껴진다며 적극적으로 출연의지를 밝혔다. 이들 4명의 여자들은 자신을 사랑했던, 그러나 비겁하게 도망치고, 뻔뻔하게 다시 돌아와 만나고 싶어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그 ‘놈’의 실체를 드러낸다. 속으로만 간직했던 얘기들을 울컥 토해내는 그녀들의 대사들은, 다른 누구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를 한다. 그리고 어느새 손뼉을 치며 공감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강진우의 그녀들

1장. 진우의 첫 번째 여자_양선
아직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을 꿈꾸는 주부 양선은 진우의 고등학교 첫사랑이다. 자신과 헤어진 이유를 ‘꿈꾸던 미래의 모습이 달라서였다’고 변명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 그의 갑작스런 연락에 남편과의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그를 찾는다.

2장. 진우의 세 번째 여자_민하
대학원 시절 연인이었던 부잣집 딸 민하. 언제나 섹시하고 도발적인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쿨한 여자다. 진우의 정식 여자친구가 아닌 단지 진우의 바람 피는 상대, 세컨드로 자신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진우’라는 존재는 여전히 아픔이다.

3장. 진우의 네 번째 여자_정희
중년의 여배우 정희는 진우가 졸업 후 조연출로 참여했던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영화감독의 아내다. 결혼생활 이후 한번도 행복한 적 없던 그녀에게 그의 존재는 행복자체였지만 불륜사실이 발각되자 그는 혼자 몰래 도망쳐버렸다. 다시 찾아온 그에게 복수 아닌 복수를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여전히 상처뿐이다.

4장. 진우의 두 번째 그녀_은후
레지던트인 은후는 진우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다. 하지만 진우의 이별이 늘 그러했듯,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떠났다. 약혼녀와 결혼날짜를 잡고 다시 나타나 그녀를 가장 사랑했다고, 결혼 전에 오해를 풀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애원하는데.



지나간 연인들을 만나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대화

연극 <썸걸(즈)>의 강진우 vs 영화 <S-다이어리>의 나진희

나진희: 정말 충격이었어요. 사랑을 완성할 줄 알았던 스물아홉 살에, 그것도 만난 지 1년 된 날 그렇게 차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게 사랑인 줄 알아? 옛날 남자들한테 가서 물어봐. 널 사랑했는지!” 혼자 머릿속으로 고민하느니 지나간 내 사랑들에게 날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얘기가 듣고 싶었죠. 그래서 찾아갔어요. 오빠는 어쩌다 옛 연인들을 찾게 되셨어요?

강진우: 글쎄. 젊고 예쁜 약혼녀가 있고 결혼날짜도 잡았지만 왠지 모를 그런 기분이 들었어.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 결혼 전 우울증)는 여자들만 겪는 게 아니라구. 그냥 그녀들이 보고도 싶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진희: 에이, 오빠 다른 꿍꿍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 남자들이 나를 사랑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들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오빠는 이유가 좀 불분명해요.

강진우: 흠흠(헛기침하며) 아니, 뭐……. 그런 거 없어. 좀 뜬금없긴 하지. 그냥 예전에 내가 잘못한 게 많아서 이제라도 사과하려고. 그나저나 그 남자들 만나서 어떻게 됐어?

나진희: 그 사람들 너무 많이 변했어요. 추억의 그 사람들과는 전혀 딴판인 얼굴로 사랑을 부정하더군요. 게다가 아름다웠던 우리 추억까지 산산조각 내버렸구요.

강진우: 안타깝다. 그래서 무슨 특단의 조치라도 내린 거야?

나진희: 제가 이래 뵈도 꽤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거든요. 그 사람들 만나면서 하나하나 다이어리에 써 놓았던 것들을 근거로 제 사랑을 보상받기 위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어요. 그래서 영화 제목도 S다이어리가 된 거죠.

강진우: 아, 그거 되게 재밌다. 나도 한번 해볼까?

나진희: 오히려 오빠가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까 호텔방에서 옛날 여자들을 만나지. 도대체 옛 연인들을 만나는 명확한 목적이 없잖아요. 목적이.

강진우: 꼭 목적이 있어야 사람 만나고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러는 너의 목적은 뭐였는데?

나진희: 내 사랑을 물로 보지 마! 하하하.

강진우: 그거 좋네. 내 목적은……. 그러니까 내가 그녀들을 만나게 된 진짜 목적은 말이야…….



■ 공연정보 ■
공연기간 : 6.8-8.5
공연시간 : 화-금 20:00 토․일․공휴일 15:00, 18:00
공연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원    작 : 닐 라뷰트
각    색 : 황재헌
연    출 : 황재헌
출    연 : 최덕문 이석준 박호영 우현주 정재은 정수영
제    작 : 동숭아트센터 씨어터컴퍼니, 맨씨어터
티켓가격 : 일반 3만원, 학생 2만원
러닝타임 : 90분
문의예매 : 02.776.6007 www.idsartc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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