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게 어디 있는데?"… 연극 '클로져'

입력 : 2007.06.25 09:13
<클로져>는 우리가 사랑 위에 곱게 포장해 놓았던 환상의 포장지를 거침없이 벗겨버린다. ‘거짓말이라도 해봐. 요즘 그게 유행이야’, ‘네 꺼보다 더 달콤해!’와 같은 선정적인 동시에 너무나도 지적인 대사들은 당신이 열렬히 찬양해 마지않던 그 아름다운 사랑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린다.
솜사탕 같이 달착지근한 로맨스에 길들여져 있던 당신에게 연극 <클로져>는 ‘진실’이란 이름의 무시무시한 폭탄을 날릴 것이다.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혹은 경험해봤을 은밀한 ‘관계들’과 마주하며, 당신은 마치 타인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듯한 당혹감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

<클로져>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남녀가 만나고, 키스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보기 드문 ‘사랑’ 이야기 말고, 남녀가 섹스하고, 기만하고, 한눈팔고, 배신하는 흔해빠진 ‘관계’에 대한 이야기. 네 명의 남녀는 뜨겁게 서로를 탐하다가도 한순간 차가운 이성의 계산기를 두들기며 서로를 할퀴고 상처 입힌다. 등장인물인 태희가 낯선 사람들을 향해 건조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것처럼, <클로져>는 얽히고설킨 네 남녀의 행보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관객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씁쓸한 상념에 잠기게 한다. ‘내가 지금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것, 그게 과연 사랑일까?’


신문사 부고 담당 기자인 대현은 어느 날 출근길에서 운명적인 사랑 지현을 만난다. 그는 스트립 댄서인 그녀에게 반해 바로 동거를 시작하고, 그녀의 인생을 소재로 글을 써 소설가로 데뷔 한다. 한편 피부과 의사인 운학과 결혼을 앞둔 사진작가 태희는 대현의 사진을 찍어주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와의 사랑에 빠져들고, 운학은 스트립 바에서 우연히 만난 지현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면서 네 남녀의 관계는 실타래처럼 얽혀들기 시작하는데...... 


연극은 네 남녀의 사랑과 권태, 그리고 일상화된 배신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 믿고 있던 감정이 사실은 욕망과 소유와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폭로한다. ‘타인은 곧 지옥’이라던 사르트르의 말처럼, <클로져>는 다가설수록 서로에게 지독한 타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비극을 통해 완전한 소통이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연극이 끝난 후 머릿속을 맴도는 건 배신당한 지현이 허무하게 외쳤던 단 한 줄의 대사뿐. ‘사랑? 그게 어디 있는데?’


네 남녀의 네 가지색 진실게임


이기적인 사랑 - 대현


지현: 그래도 사랑은 했던 거지?
대현: 언제나 그럴 거야.
지현: 그런데 나한테 왜이래?
대현: 왜냐하면 난 이기적이고... 그 여자하고 있으면 더 행복할 거 같으니까.


두 여자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는 대현. 죽은 사람을 가치 있게 다뤄야 하는 부고기자가 직업인 그는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욕망 앞에서는 우유부단하다.


정열적인 사랑 - 지현


지현: 벗을까요?
운학: 아니. 지현아. 진실을 말해줘.
지현: 진실? 무슨 진실이요? 진실이란 게 뭐가 그리 중요하죠?


손님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몸을 보여 주는 지현은 세상의 시선과 가식으로부터 이탈한 순수함과 돈을 취하는 영악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네 명 중 가장 능동적인 캐릭터.


이성적인 사랑 - 태희


태희: 난 키스 안 해요, 낯선 남자랑.
대현: 나도 마찬가지예요.
      (둘 키스한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한 그녀는 네 명 중 가장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언제나 어리석고 무력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돌적인 사랑 - 운학


태희: (이혼서류를 펼쳐놓으며) 싸인 부탁해.
운학: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내 수술실에서 한번만 하자. 마지막으로. 싫어? 이러는 내가 역겹지?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매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모욕적인 말들을 서슴지 않는 마초 같은 남자, 운학. 그는 다소 변태적일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동시에 계산적이다.




‘클로져(Closer)’의 이중적 의미

‘closer’의 사전적 의미는 ‘관계를 닫는 자’이다. 그러나 ‘가까운’이란 의미를 갖는 close의 비교급 또한 ‘closer’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제목은 한층 더 의미심장해진다. 결국 이것은 ‘더 가까이(closer)’ 다가갈수록 ‘닫혀버리는(closer)’ 사랑의 아이러니한 속성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영화 <클로져>에서 인상적으로 날아들던 앨리스(지현)의 대사 ‘Hello, Stranger?(안녕, 낯선 사람?)’가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서로에게 더더욱 낯선 타인이 되어버렸던 그들. 아아, 정녕 사랑이란 이다지도 잔인한 것이란 말인가!


영화 <클로져>에는 없는 것들?!

나탈리 포트만과 주드 로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던 매혹적인 영화 <클로져>. 그러나 한국판 연극 <클로져>에도 분명 영화에는 없는 매력들이 존재한다. 일단 씬이 뭉텅뭉텅 잘려나가고 시간이 멋대로 도약하던 영화의 구성에 비해 연극은 한결 친절한 서사를 보여준다. 대현-지현과 태희-운학 커플의 이별장면을 반으로 분할시킨 무대를 사용하여 번갈아가며 교차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 지현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녀의 집착증에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하는 새로운 대사의 삽입도 그러한 장치들 중 하나다. 또한 연극은 대현과 운학의 민망한 채팅장면을 각각 대사로 처리하여 보다 생생한 중계(?)가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대라는 한계 때문에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했던 인상적인 거리씬은 재현되지 못했다.


■ 공연정보 ■
공 연 명 : 연극 <클로져>
공연기간 : 5.26-7.29
공연시간 : 화-금 20:00 주말·공휴일 16:30 19:30
공연장소 : 대학로 허밍스아트홀
원    작 :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
번역·윤색 : 민복기
연    출 : 민복기
출    연 : 박성준 서진호 김영준 김화주
제    작 : ㈜악어컴퍼니
티켓가격 : 일반 2만 5천원, 대학생 2만원
문의예매 : 02.764.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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