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여름 밤의 꿈>
“아이가 태어나면 월하의 노인이 아이 새끼손가락에 빨간색 실을 묶는대요. 그 아이의 운명의 상대에게도…….” 그 빨간 실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월하빙인(月下氷人)이 장난삼아 빨간 실을 꼬아 놓은 탓인지 새끼손가락에 걸린 빨간 실을 당겨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명의 실, 그 끝은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도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All is fair in love and war’라 했던가. 사랑과 전쟁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정당하다는 그 유명한 얘기. 사랑하는 사람의 손가락에 용기를 내어 빨간 실을 묶으려는 ‘사랑에 미친’ 네 명의 연인이 16세기 영국에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왔다. 바로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이다.
영국여왕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극본은 전통적이고 동시에 현대적이다. 낡은 도덕교과서에 나올 법한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본연의 양면적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었으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많은 연출가들이 한 작품을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한여름 밤의 꿈>도 예외는 아니다. 복잡할 것 없는 내러티브지만,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감정에 대한 전 인류의 ‘고민’이 오늘날 수없이 많은 <한여름 밤의 꿈>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조금 더 빛난다. 이 작품은 11개국, 38개 도시를 다니며 공연을 할 만큼 서양의 고전에 가장 한국적인 옷을 입힌 공연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한국최초로 세계 최고의 극장인 런던 바비칸 센터에 초청받기도 했다.
날개달린 요정들이 날아다니고, 향긋한 꽃내음 가득한 마술 같은 여름밤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은 막걸리 한 사발 떠놓고 평상에 누워 반딧불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세는 여름날 밤이랄까.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전통악기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 여름 밤, ‘도깨비’에 홀려 한바탕 소동을 벌이게 될 네 연인의 이름은 항, 벽, 루, 익이다. 이는 우리 별자리 28수 동궁청룡칠수, 북궁현무칠수, 서궁백호칠수, 남궁주작칠수 중에서 가장 밝고 빛나는 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원작의 모티브는 최대한 살리면서 극단 여행자만의 색을 담기 위해 원작에 등장하는 요정들을 술과 여자, 춤과 농악을 좋아한다는 한국적 정령 ‘도깨비’로 바꾸었다. 특히 어리석은 남자의 버릇을 바로잡는 슬기롭고 현명한 한국여인을 모델로 하여 돗(오베론)을 여자도깨비로, 가비(티타니아)를 남자도깨비로 설정했다. 네 연인들이 엇갈린 사랑을 하게 만드는 장난꾸러기 요정 퍽은 장난꾸러기 도깨비 두두리로 다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
셰익스피어 원작 <한여름 밤의 꿈>은 장난꾸러기 요정 ‘퍽’의 대사로 끝을 맺는다. “우리들은 그림자. 우리들 그림자가 때때로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꿈꾸는 동안의 일이라 생각하세요. 언짢은 꿈자리 때문이라 생각해서 용서하세요. 이 연극이 초라하고 허황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꿈같은 것이니 나무라지 마시고 용서하세요. 앞으로 고쳐나가겠습니다.” 앞으로 고쳐나가겠다고 하더니, 정말 400년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이도 고쳐졌다. 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에서 모티브를 얻어 무대에 오르고 있으니. 과연, 만나는 연출가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한여름 밤의 꿈>이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 살펴보자.
먼저, 뮤지컬 <한여름 밤의 악몽>이다. 꿈은 꿈인데 무서운 꿈이다. 귀여운 숲의 요정들이 아니라 흰 소복에 긴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한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극단 자명종 역시 셰익스피어 원작의 <한여름 밤의 꿈>을 한국적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보다는 원작 스토리에 충실하지만, 조선 시대 숲 속 흉가를 배경으로 숲 속 혼령의 왕과 왕비가 등장한다는 데서 단순한 ‘꿈’이 아닌 ‘악몽’이라는 제목이 탄생한 것이다.
요정의 왕 오베론이 만든 환상제국 ‘클럽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장하몽(一場夏夢)을 다룬 댄스 뮤지컬 <클럽 하늘>도 현대의 시점에 맞게 각색됐다. 연극, 음악, 뮤지컬 등 공연양식 뿐만 아니라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러 요소를 섞어 ‘춤과 노래’로 표현을 하며, 동춘서커스 전 단원이 등장해 환상적인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오베론이 나이트클럽 사장이 되어 관객을 유혹하고,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는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매혹적인 춤을 춘다. 배우들은 아랑곳없이 관객에게 다가와 현란하게 몸을 흔들고 요란한 환호성을 뒤로 한 채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 요정의 심부름꾼인 퍽이 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묘기를 보일 때면 깜짝깜짝 놀래고, 나이트클럽에서의 화려한 춤에 절로 발이 흥겹게 건들거린다.
이번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세계 12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매진행진을 기록한 뮤지컬 <동키쇼>다. 이 작품은 중세의 숲을 찾은 연인들의 뒤죽박죽 사랑이야기를 디스코클럽의 해프닝으로 패러디했다. 7~80년대 클럽문화를 이끈 ‘Hot stuff’로 유명한 도나섬머나 아바 등이 부른 디스코 음악이 흥겨움을 더한다. 동키쇼는 특히 조금 산만하면서 파격적인 공연 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반라의 남녀가 나와 함께 춤추며 클럽 쇼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장 전체가 무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남자배우들이 여성관객에게 접근해 춤을 추더라도 ‘뻘쭘’ 할 일은 없다. 옆을 쳐다보라. 다들 신나게 춤추고 있지 않은가. 스탠딩 나이트형 공연인 동키쇼는 관객이 같이 춤추고 술 마시며 공연을 같이 즐기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기보다는 ‘즐기러’ 간다.
극단 여행자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돗(숲의 여왕)’이 말한 것처럼 어차피 잠이 깨면 모든 게 한낱 꿈으로 여겨질 것을. 눅눅하고도 달큰한 바람 부는 이 여름날 사랑에 담뿍 빠져보고 싶은 젊은 영혼들이여, 즐겨라! 한바탕 도깨비들의 놀음판에 빠져라! 어차피 잠이 깨면 모든 게 한낱 꿈으로 여겨질 테니, 허이!
공 연 명 : 연극 <한여름 밤의 꿈>
공연기간 : 6.15-7.8
공연시간 : 화-금 20:00 토 16:00 20:00 일 16:00
공연장소 :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연 출 : 양정웅
안 무 : 이윤정
출 연 : 정해균 채국희 김준호 이진 김지령 이성환 박소영 김진곤 김지연 이정선
제 작 : 극단 여행자
티켓가격 : R석 3만원, S석 2만원, A석 1만 5천원
러닝타임 : 90분
문의예매 : 02.3673.1392 www.yohang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