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이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서울시극단은 창단 때부터 ‘시민연극’이라는 방향성을 세우고 시민의 삶과 시대를 그린 연극, 예술성과 공공성, 대중성을 고루 지닌 연극을 지향해 왔다. 그간의 레퍼터리를 살펴 보면 <안티고네> <민중의 적> <벚꽃동산> <세일즈맨의 죽음> <사천의 착한 사람> <오셀로>등 그리스 비극부터 입센, 체홉, 아서 밀러, 브레히트 등 근현대 작가들의 고전 위주로 공연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57년의 연륜을 가진 국립극단이 레퍼터리의 무정견한 선정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극단으로서의 뚜렷한 정체성과 색깔을 확립하지 못한 데 비하면, 뒤늦게 출발한 서울시극단은 적어도 레퍼터리 문제에 있어서만은 혼선을 보이지 않고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온 것이다. 공립극단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현명한 행보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 이는 극단의 이미지를 다소 고리타분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고전과 근현대 번역극 위주의 공연은 관객들에게 이름높은 명작을 소개하는 교육적 효과는 거둘 수 있지만 대신 동시대적 생활정서와 표현미학이라든지 젊은 극단 특유의 참신한 실험성과 패기는 각인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민간극단들이 제각각 실험성이나 대중적 감수성을 표방하는 공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극단까지 여기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시대적 삶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 레퍼터리와 현대적 표현미학에 대한 고민은 창단 10년 이후를 열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꼭 필요할 듯 싶다.
<여관집 여주인>(까를로 골도니 작, 이병훈 연출)은 10주년을 맞은 서울시극단의 중간 점검적인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극의 주제는 시민층에 대한 찬가로, ‘시민연극’을 주창하는 시극단의 이념과 묘하게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희극작가 골도니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취재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등장시켜 생동감있게 성격과 그 시대의 삶을 표현한 작가이다. 그는 귀족계급은 타락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비하시켜 표현한 대신 중산층이나 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훨씬 우월하게 그렸다. 특히 여성 등장인물의 이상화는 특징적이다. <여관집 여주인>에는 바로 골도니의 이러한 극작상의 특징들이 잘 드러난다. 다양한 계급을 대표하는 여러 인물들의 성격을 생동감있게 그리면서 이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관계맺는 과정, 그리고 한 인물 안에 내재하는 다양한 성격의 혼재를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고 18세기의 특징인 시민층의 활력을 매우 재치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극은 영리하고 재치있는 여관집 여주인 미란돌리나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는 4명의 남자들 사이의 각축을 희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미란돌리나에게 구애하는 4명의 남자들은 18세기 이탈리아 사회를 대표하는 계층인 셈이고, 그들의 개성적이고 강렬한 성격이 이 희극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몰락한 후작은 귀족 지위를 내세워 구애하고, 귀족 지위를 돈으로 산 상인계급 출신의 백작은 황금만능주의를 내세워 구애하며, 평민층인 여관 종업원 파브리찌오는 미란돌리나 부친이 맺어준 결혼상대라는 점을 내세운다. 처음부터 미란돌리나에게 미혹당한 이 남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기사는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혐오를 드러내며 다른 남자들을 비웃는다. 바로 이때문에 미란돌리나는 기사를 유혹하여 그의 위선을 깨뜨리려는 놀이를 벌이게 된다.
이처럼 이 극은 사회의 가치와 인간성격을 표상하는 5명의 인물들이 벌이는 놀이와 카니발의 세계이다. 기존의 신념이 전도되고 거짓과 진실이 몸을 섞고 지위가 뒤바뀌는 역설의 세계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극의 묘미와 유쾌함은 바로 여러 국면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카니발적 전복에 있다고 할 것이다. 기사는 미란돌리나가 다양하게 구사하는 수법에 넘어가 그녀의 사랑을 애걸하게 되고, 또 승리를 구가했던 그녀는 기사가 벌이는 광적인 소동 때문에 평판과 이득을 잃게 되는 처지에 빠진다. 평민계급 특유의 현실감각을 소유한 그녀는 자신이 획책한 놀이의 위험을 종결짓기 위해 결국 평민 파브리찌오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연출의 이병훈은 다양한 개성들이 만들어내는 화성적 구조와 음악적 리듬을 경쾌하게 살린 모던한 공연을 주조해냈다. 18세기 이탈리아라는 시공간이나 줄거리의 구태의연함이란 약점을 세련된 무대장치와 경쾌한 막간극, 상징성이 가미된 의상 등을 통해 유쾌한 연극 놀이로 전환함으로써 현대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 시대 동판화를 응용한 배경막, 골도니 작임을 알리는 판넬로 만든 극장 아치, 이중적인 무대막 등 무대디자인(김희재)은 연극무대가 곧 세상이며 인생이라는 것을 시각화함으로써 “세상은 아름다운 책이지만 그것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다.”는 골도니의 명언을 구현해낸다.
현대적 감성으로 보면 낡아보이는 인물들이나 줄거리를 구원한 것은 특히 막간극이었다. 장면전환 때 악사의 노래나 연주로 희극적 분위기를 강조한다든지, 음악에 맞춰 코러스들이 소품을 옮기고 춤을 추고 혹은 인물의 행동을 패러디하는 동작, 양식화된 신체언어 등의 양식상의 혼종으로 동시대적 미학을 표현해낸 것이다. 희극성과 음악적 리듬을 경쾌하게 표현해낸 배우들의 앙상블은 수준급이었으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당찬 이중성을 내보이며 극을 주도해야 할 여주인공 역의 강지은은 배역 소화에 힘이 부치는 듯 보였다. 또, 파브리찌오 역의 주성환은 귀족들을 젖히고 미란돌리나를 얻게 되는 신뢰감을 주는 평민으로서의 성격 표현이 구축되지 않아서 미란돌리나의 선택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한 마디로 이 공연은 시청각적으로 즐거운 공연이었다. 도도하고 현실적인 성격의 여주인공이 결혼상대로 평민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사회 주도층인 시민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창단 10년의 분수령을 맞이하여, 서울시극단은 앞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동시대적 삶의 문제나 사회적, 본질적 실존을 깊이있게 다루는 극,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비쳐보고 성찰하게 하는 동시대적 주제와 미학의 연극을 시도함으로써 보다 젊은 극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