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 히스클리프의 것…연극 "폭풍의 언덕"

입력 : 2007.05.25 11:35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이별이야기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이별이야기를 뽑아 분서갱유한다면 도서관의 문학코너는 텅텅 비게 될지도. 변심한 애인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하는 이야기는 아주 ‘뻔’한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통속 드라마작가들은 버림받은 쪽이 버린 쪽을 찾아가 복수하는 드라마를 구성하곤 한다. 드라마 <청춘의 덫>이 대표적인 케이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도 그 흔하디흔한 치정복수극의 하나다.


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이름은 히스클리프(Heathcliff). 여기서 히스(Heath)는 ‘고독, 쓸쓸함’이라는 꽃말의 에리카의 다른 이름이고, 클리프(Cliff)는 절벽을 의미한다. 절벽에 핀 꽃. 성명학적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고독한 운명’의 히스클리프의 인생은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고아소년 히스클리프는 마음씨 좋은 언쇼 씨의 양자로 들어간다. 언쇼 부부에겐 아들 힌들러와 딸 캐서린이 있는데, 아무리 착한 부모아래서도 망나니 자식이 나올 수 있는 법이라고 힌들러가 딱 그렇다. 힌들러는 굴러들어온 돌, 히스클리프를 못마땅해 하고 그를 괴롭히는 게 일이다.


그리고 한 여자가 있다. 여자의 이름은 캐서린(Catherine). 영어권에서 캐서린이란 ‘순결한 여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캐서린은 친오빠 힌들러와는 달리 히스클리프를 아꼈다. 둘은 친 오누이보다 서로를 더 아꼈고, 장성한 후에도 사랑은 변함없었다. 어느 날 캐서린은 폭풍의 언덕에 앉아 히스클리프에게 부자가 되어 자신을 못된 오빠로부터 구하러 오는 백마 탄 왕자님이 되어 달라 부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지주의 아들 에드거 린튼이 캐서린에게 청혼을 하면서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캐서린를 떠난다. 캐서린이 가정부가 나누는 말을 엿들은 직후에.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힌들러)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캐서린의 마음을 확인한 히스클리프는 마을을 떠난다. 그가 떠난 후 히스클리프의 행방을 찾아 사방을 해매이던 캐서린은 결국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된다. 그녀 앞에 히스클리프가 다시 나타난 건 3년만의 일. 가난하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칼을 갈아 부자가 되었고 그 돈으로 언쇼 가문의 집과 농장을 모두 사들인다. 복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힌들러를 괴롭히는 것은 물론, 캐서린의 시누인 이사벨라에게도 접근한다. 결국 많은 치정복수극이 그렇듯,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 결혼에 성공한다. 사랑 없이, 오직 복수를 위한 결혼에.


그러나 <폭풍의 언덕>이 단지 그런 치정복수극에 불과하다면 ‘영어로 쓴 3대 비극’으로 추앙받지 못할 것이다. 이후 죽음을 앞둔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용서를 빌고,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두 사람이 돌아온 길은 너무 멀었다. 그런데 만일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그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면 그들은 미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야.”


만일 히스클리프가 그 말을 들었다면 훗날 에드거의 여동생과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듯. 캐서린이 에드거에게 시집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 하지만 모든 불행의 씨앗이 지워졌다는 사실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행복을 담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복수의 칼날을 갈 필요가 없었던 히스클리프는 부자가 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생을 마감했을 수도. 혹은 훗날 두 사람이 오해가 아닌 증오심을 품고 헤어지게 됐을 수도.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건 히스클리프가 남을 생을 복수에 저당 잡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바로 그 한 가지 사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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