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불편함을 주는 것"…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

입력 : 2007.05.17 08:46

let’s meet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 “모든 예술은 불편함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 연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 관객으로서 과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유럽 연극의 징후를 최전선에서 보여주는 연출가니까. 그가 발표하는 작품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의 유수한 공연 예술 축제의 환영 받는 손님이 되었고 수상 목록 역시 화려하다. 그렇다면 왜 세계 공연계는 그의 불편한 예술에 찬사를 보내는 것일까?


이야기는 로메오 카스텔루치가 그의 누이와 함께 세운 극단, 소시에타스 라파엘로 산지오(Societas Raffaello Sanzio)가 형성된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단의 초창기 작품 중 스타니슬라프스키에 관한 매우 독특한 해석으로 주목 받은 이들은 이후 십 년간 기존 관념에 대해 도전적인 작품을 발표해오다 1992년을 기점으로 <햄릿> 등 서양 고전극으로 우회하는 한편 <이솝 이야기>, <헨젤과 그레텔> 등의 어린이를 위한 극을 발표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들의 작품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 계기는 1998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왜곡되고 고통 받고 상처받아 끔찍한 낡은 신체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불편함’의 감정을 선사한다. 2년 후 그는 다시 아비뇽에서 프랑스 소설가 셀린느의 원작 <밤의 끝으로의 여행>으로 다시 돌아와 언어 해체 끝으로의 여행을 보여주며 명성을 굳힌다.


텍스트로부터 멀어짐. 시각 이미지와 음향에게 절대적인 권위 부여. 연기자의 신체와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대한 탐구.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작업 노트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의 표현은 그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열쇠를 관객의 손에 쥐어준다. ‘연극은 재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연극은 우리 내부의 울림을 찾아내는, 알려지지 않은 형상과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명제는 텍스트에 대항하는 이미지와 음향의 효과에 KO승을 내주었고, ‘아름다운 신체’를 무참히 짓밟은 ‘고통당하는 신체’에게 일련의 에너지를 부여했다.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후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무대에 계속적으로 접목시키려는 시도 역시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다. 이런 그에게 유럽 연극계는 기꺼이 아방가르드 연극의 선두주자의 자리를 내주고 미래 연출가의 의무를 그 어깨에 지웠다. 한편 이 모든 예술적 실험이 정교한 이론과 미학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의무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소시에타스 라파엘로 산지오는 연극 이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고, 독립적인 영상 작업 방식으로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다.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들이 지난 2003년 LG아트센터 <창세기> 공연 이후 스프링웨이브 페스티벌 2007에 <헤이 걸!>로 다시 돌아온다. 작년 파리 가을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대단한 관심을 모았던 이 작품이 한국에서 어떤 반응을 얻어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현대극의 실험적 무대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욕구를 마구 자극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연출가 자신이 밝혔듯 <헤이 걸!>은 ‘움직임’에 대한 작업이자 내용이 없는 극, 혹은 내용이 숨겨진 극이다. 충격과 떨림, 급진적인 낯설음의 무대 앞에서 불편한/진실한 예술을 기다리는 관객이라면 그의 연극을 완벽하게, 끝까지 믿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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