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아트>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앵콜 아트>의 포스터에도 빨강, 파랑, 초록이 등장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세 가지 색을 섞은 결과물은 검정색이다(정확히는 검정색에 가까운 무채색). 그럼, 빨간빛, 파란빛, 초록빛이 있다. 세 가지 빛이 동시에 겹쳐지는 지점에는, 색과는 정반대로 하얀빛이 탄생한다.
이제 여기에 세 친구가 있다. 색깔 혹은 빛깔이 서로 다른 세 친구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최종적인 결과는 검정색일까, 아니면 하얀빛일까? 연극 <앵콜 아트>는 ‘우정’이라는 틀 안에서 각 주체가 ‘친구’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를 탐구하는 블랙코미디다. 이 ‘블랙코미디’가 보여주는 우울한 소통의 단절은 그러나, 종국에는 서로의 정체성을 절묘하게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화합으로 인해 아름다운 ‘화이트코미디’로 변한다.
청담동의 ‘잘나가는’ 피부과 의사 수현이 1억 8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앙트르와의 그림 때문에 세 친구의 충돌은 시작된다. ‘하얀색 바탕에 하얀 줄이 그려져 있는’ 그림. 지방대 전임교수인 규태는 자랑스럽게 작품을 보여주는 수현에게 그 그림을 “판때기”로 규정하고 수현은 “제대로 알고나 말해라”고 받아친다. 티격태격하는 둘 사이에 성격좋은 덕수가 끼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진다. 언쟁하는 수현과 규태는 덕수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치사한 말을 내뱉고, 친구의 아내를 멸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예술이다 쓰레기다 왈가왈부하지만…
수현과 규태는 앙트르와의 그림을 두고 예술이다 쓰레기다 왈가왈부하지만 이 ‘미학토론’은 사실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제 나하고 같이 웃지도 않”는(규태) 친구가 “언제부턴가 완전히 이상해졌”다는(수현),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그리고 그 괴리감의 중심에는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자리한다. “친구들끼리는 항상 서로 돌봐주고 감싸줘야 한다”고 말하는 규태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는 수현. 이 둘의 생각은 모두 옳고, 동시에 모두 틀리다. 진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은 두 생각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을 것이기에.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우리 모두 그러지 못해 아우성이다. 그러니 그들이 쏟아내는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라는 항변은 비단 무대 위에서만 그치지 않고 관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꿰뚫는다.
관계 맺기의 진리를 깨달은 끝에 피어나는 ‘하얀 웃음’
한 점의 그림으로 인해 절교의 위기에 치달은 세 친구가 화합하는 단초를 여는 이는, 놀랍게도 ‘가장 만만해 보이는’ 덕수다. “내가 나인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며 네가 너인 것은 네가 너이기 때문에 (…) 네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너라면, 내가 너이기 때문에 네가 나이고 (…)” 심오한 덕수의 대사 속에 담겨있는 핵심은 ‘인정’과 ‘너그러움’이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 서서히 관계 맺기의 진리를 깨닫는 수현과 규태. 수현은 자신이 예술로 떠받드는 것이 친구에게는 쓰레기가 될 수 있음을, 놀라운 방법으로 받아들인다. 규태 또한 수현을 이해하면서 애초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그림에서 ‘어떤 것’을 보기 시작한다. 결국 아름답게 융합한 수현과 규태, 그리고 덕수 사이에는 웃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앙트르와의 그림처럼 ‘하얀’ 웃음이.
<아트>가 ‘앵콜’되기까지
연극 <아트>는 2004년부터 시작되어 지방공연을 제외하고 이번이 9번째로 올려지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흥행연극이다. 뛰어난 작품성과 관객에게 사랑받는 대중성을 겸비한 <아트>는 작년 6월부터 3달간 충무아트홀 소극장으로의 ‘외도’를 제외하고는 줄곧 대학로를 지켰다. 학전블루 소극장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을 오가며 꾸준히 올려진 <아트>는 작년 11월 대학로에 120석짜리 전용관을 열었다(허밍스 아트홀). 이번 <앵콜 아트>는 <아트> 전용관에서 올려진 두 번째 <아트> 공연이다.
<아트>의 롱런 비결에는 스타 캐스팅의 힘도 컸다. 첫 번째 <아트>를 공연한 정보석권해효를 비롯해 오달수박광정심혜진송승환김석훈 등 여러 스타들이 <아트> 무대 위에 섰다. 한편 <아트>는 지금까지 한 번(8번째 <아트>)을 제외하고는 계속 더블캐스팅을 유지했는데, 이번 <앵콜 아트>는 연륜 있는 ‘박성준, 김한희, 박순철’ 팀과 패기 넘치는 ‘박윤호, 허성민, 조성호’ 팀으로 나뉘어 각각 수금일요일과 화목토요일의 <아트>를 책임지고 있다.
영화 <가족의 탄생>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앵콜 아트>의 친구들이 서로에게 항변하는 이 말은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된다. <가족의 탄생> 속 세 가지 에피소드는 가장 가깝고 가장 당연한 관계인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후회를 응시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미라(문소리 분)는 항상 제멋대로인 동생 때문에 ‘난데없이’ 두 여자를 떠안게 되고, 일본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선경(공효진 분)은 유부남과 ‘연애’하는 엄마에게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거린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채현(정유미 분)을 그녀의 남자친구 경석(봉태규 분)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경석 때문에 채현은 상처받는다. <가족의 탄생>은 하지만, 영화 속의 그들이 아무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도 진심은 모두가 착하다고 말한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연하게 묶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부대끼고 소리치고 갈등하던 그들 모두는 결국 함께 자리하며 웃음 짓는다. 절망 속에 있을수록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라고, 카메라는 연민어린 시선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은 결국 이 모든 외로움과 오해를 딛고 함께 살아가자고 말하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 <친구>
혹시나 <앵콜 아트>를 관람한 후에 ‘남자들이 저렇게 치사하고 쩨쩨하게 굴다니,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하면서 괴로워하는 분이 있는가. 그 괴로운 깨달음을 계속 간직하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때면 영화 <친구>를 다시 보시라. ‘남자들의 우정’에 관한 일그러진 판타지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면서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라.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라는 포스터 카피처럼, <친구>에 나오는 ‘친구’들은 쉴 새 없이 때리고, 부수고, 죽이면서 “우리는 친구 아니가?”라는 말을 내뱉으니 말이다. 상택(서태화 분)의 회상 속에서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는 ‘어쩔 수 없이’ 깡패가 되어 ‘운명적으로’ 충돌한다. <친구>는 그 충돌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폭력과 죽음과 희생을 ‘남자의 의리’로 감싸 안는데, 2001년 개봉 당시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호응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가 억압하는 ‘남성’의 판타지가 얼마나 공고한지를 입증한다. <앵콜 아트>가 조각내버린 그 판타지를 화면 속에서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갈급한 자여, <친구>를 보시라. 단 <친구>가 보여주는 ‘친구’의 관계는 일그러졌음을 잊지 말고,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더더욱 ‘따라하지 말 것’.
허밍스 아트홀 2.14 - 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