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칠수와 만수> 연출가 유연수, 배우 박정환, 진선규
잘된 개작(改作)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80년대 시대상이 물씬한 <칠수와 만수>를 연우무대 30주년 공연으로 택했단 얘길 들었을 때 솔직히 우려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나니 괜한 걱정했나 싶다. 연극 <아트>에서 덕수의 대사를 감칠맛 나게 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는데 숨겨둔 연출 실력을 발견했다.
세 사람의 만남은 어땠나. 특히 두 배우는 첫 만남이 이인극인데다 말투나 움직임이 몸에 붙기까지 호흡을 맞추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으리라 여겨지는데.
박정환 (이하 ‘박’) : 캐스팅은 이미 되어 있었다. 지난여름부터 하기로 했으니. 이인극이란 형식 보단 연우무대 출신으로 30주년 기념공연이란 게 더 중요했다.
진선규 (이하 ‘진’) : 지난겨울 연우무대에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할 때 제의를 받았다. 원래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는 편했다.
유 : 뮤지컬을 염두하고 1차팀 2차팀 만들었지만 정극으로 바뀌게 됐는데 그래도 다들 연기를 잘하니까 걱정은 안됐다. 워낙 유능한 배우들이라 내가 연출한다고 하자 했으면 안 했을 거다. 하하. 연습기간은 두 달 정도, 배우들 만나고도 대본 수정을 오래해야 했다.
박 : 선규가 잘한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원래 만수 캐스팅이 칠수보다 나이 많은 편이었는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 어리단 느낌이 안 들었다.
진 : 대학로에 처음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라서 처음에는 주눅 들었었다. 정환이 형 얘긴 숱하게 들었고, 연수 형님은 영화와 연극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너무 쟁쟁한 분들이라 겁이 났었다. 나한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흘려듣지 못하겠더라. 더구나 연수 형님은 만수 역을 하셨으니. 연습 끝나고 집에 와서도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어느 한 순간에 풀리더라. 지금은 마치 ‘쏘세요~’ 하면 ‘오늘은 몇 점!’ 하면서 맞을 준비가 된 과녁판처럼 좋고 편하다. (웃음)
유 : 두 친구가 감각들이 좋다. 캐릭터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법에 있어서. 정환이는 극단 후배고 전에도 함께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함께하면서 연기력이 많이 업그레이드 된 걸 느꼈다. 선규에겐 좋은 교수진 아래 공부한 연극원 출신에, 몸 쓰는 녀석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못 미더워 하면서 시작했는데 같이해보니까 워낙 성실한 친구다. 아주 만족스러워 ‘소문이 맞구나’ 했다. 이인극이라서 배우들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나이 차가 있는데 둘의 호흡이 생각 이상으로 잘 맞는다.
전(前) 작품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번 작품은 어떤가.
박 : 벌써 대학로 11년 차다. 의미가 되는 작품, 전환점이 되는 작품 꼽기 어렵지만 그래도 선배들한테 ‘연기 좀 하는 구나’ 소릴 들은 게 <즐거운 인생>이고, <아가멤논>은 외국연출자와 처음 작업해 본 작품이다. 연기하는 방법이며 작업 자체가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서는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고 대중적인 사랑도 받았다. 또 한 번 무언가 바뀔 수 있는 작품이 <칠수와 만수>가 아닐까? 하하.
진 :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에서 동식물 연기를 하다가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 하하. 그렇다고 정극을 안 했던 건 아닌데 이렇게 제대로 대사 주고받는 이인극을 하게 되서 꼭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다.
혹시 애드리브 아닐까 싶은 대사들도 있던데 원작과 비교했을 때 대사나 내용이 얼마나 수정되었나.
박 : 연습하면서 애드리브가 대사화 된 것도 있지만 실제 공연 중 애드리브는 드물다. 대사 자체가 애드리브성이 다분하다.
유 : 기존 대본에서 3-40% 정도 수정됐다. 기존 대본의 틀거지는 같으나 에피소드들이 많이 바뀌었다.
진 : 칠수와 만수의 과거가 많이 바뀌었다. 칠수에겐 여동생이 생겼고, 만수에겐 형이 생겼으니.
유 : 원작에서 철수가 이대 여학생에게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탓에 칠수 캐릭터는 더 가벼워 보였다. 그걸 버리는 게 불가능해서 생각해낸 게 칠수에게도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이었다. 만수의 문제는 원래 여동생의 임신이었는데 형의 음주사고로 바꿔 관객들이 상황을 충분히 납득하도록 변화를 줬다.
박 : 원래 만수가 인간적인데 반해 칠수 캐릭터가 가벼웠는데, 새 대본 받고 ‘와 이거~’하면서 감탄했다. 조금 진지해지더라도 필요한 변화였다.
유 : 옥상 위의 대사도 만수는 ‘이민 갈수 없을까?’ 란 대사를 뱉고, 칠수는 ‘헬기타고 박아버리자’ 식의 대사를 친다. 둘의 상황에서 접점이 안 느껴져 무언가를 공유하게 만들고 싶었다. 원작에 없는 가족사를 통해 둘은 서로를 보듬는다.
진 : 그렇다. 둘은 서로의 처지를 고백하고, 세상을 향해 소리도 지르면서 진짜 친구가 되어 간다. 훨씬 설득력 있지 않나?
중반 이후까지 배우 둘이 끌어가는 부분이 많다. 대사 량도 만만치 않더라. 특히 칠수의 대사는 따발총 같이 쏟아지니 실수할 법도 한데 안 힘들었나.
박 : 대사 량은 그램수로 재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웃음) 그동안 중 가장 많지 않을까. A다음 B고 그다음 C인 것처럼 내용을 알면 답이 보인다. 액션, 리액션이 연결된 고리 같아서 '이 질문에 대답할 답은 이거다'라고 알고 있으니 어렵진 않다. 연습 때는 말이 꼬이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공연만 들어가면 괜찮다.
진 : 형은 공연 체질이다. 자긴 빛을 받아야 한다나. 일명 ‘조명 복’ 이라고. 조명을 받으면 기운 쑥 나고 눈이 번쩍 뜨인단다. 하하.
박 : 그건 진짜 있는 거 같다. 관객들 기도 있고.
보통 배우들은 공연 전 식사 못하지 않나. 그런데 이 작품은 밥 안 먹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웃음)
박 : 그러게 난 밥 안 먹으면 공연 못한다. 주말에 2회 하는 날은 1회 끝나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만큼 진이 빠진다. 그래도 밥은 꼭 챙겨먹는다.
진 : 주말 공연 마치고 집에 오면 그대로 쓰러진다. 월요일엔 신발을 안 신을 정도다. 집 밖에 한번도 안 나온다. 하하
칠수는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고, 만수는 차분하고 현실적이다. 두 사람은 어떤가.
박 : <이>를 함께했던 김태웅 연출이 공연을 보러와선 ‘넌 작품을 하면 역할이란 비슷해져’하던데 이 작품하면서 내가 몽상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하고 싶은 게 항상 넘치는 걸 보면. 칠수도 몽상가라기 보단 작은 꿈을 꾸는 것일 뿐인데 ‘뺑기쟁이’가 그런 꿈을 꾸니 몽상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진 : 누구나 다 현실적이지 않나. 만수의 가정사 말고 기본 천성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웃기는 부분도 있고. 나 역시 우리 어머니의 착한 아들, 열심히 사는 아들이다.
그럼 부모님께 공연은 보여드렸나.
진 : 처음 공연 보여드렸을 때 아버지의 첫마디가 ‘넌 4년 동안 배워서 하는 게 겨우 네발로 기어 다니는 거냐. 그럴 바엔 그만해라’하셨다. <델라구아다>할 때도 좌석이 스탠딩인데다 내가 나올 때마다 혹시 떨어질까 불안해 ‘안하면 안되겠냐’ 하셨다. 이번엔 자신 있게 모실 수 있다. 하하하.
영화는 물론 워낙 유명한 선배님들이 거쳐 간 작품이라 부담스러운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박 : 인터뷰 때마다 했던 얘기지만 누구나 부담스러웠을 상황이다. 솔직히 처음엔 뮤지컬이라기에 덜 부담 됐던 건 사실이다. 또 예전과는 대본이 아예 바뀌었고 그때 할 이야기, 지금 할 이야기가 또 다르지 않은가. 다른 작품이라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왜 형들 옷 물려받으면 처음엔 내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입다보면 내 옷이 되지 않나.
하긴, 시연회를 보러온 1대 ‘칠수와 만수’ 문성근, 강신일이 극찬을 하던데.
유 :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런 사람들만 불렀었다. 하하
박 : 원래 떠는 성격도 아니지만 프레스리허설 땐 더 차분했다. 갑자기 없던 게 나올 수도 없고. (웃음) 선배님들이 재미있게 보셨길 바랄 뿐이다.
유 : 애들보단 내가 더 떨렸다. 갓 스무 살 넘어 연극하고 싶단 생각 하나로 서울에 올라 왔을 때 그 분들은 (문성근, 강신일) 날리던 연극배우였다. 연우에 들어온 것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였고. 그런 분들이 객석에서 내가 연출한 연극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정환이랑 성규 눈빛 보고 깜짝 놀랐다. 웃기는 얘기를 하는데도 눈빛이 살아있더라.
소극장 무대를 많이 봐왔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무대와 객석의 사이의 거리가 없다. 배우들 땀방울이 코앞에서 떨어지더라. 곤돌라를 돌리면 옥상으로 바뀌는 세트도 그렇고, 서울의 낙조를 배경에 깐 설정도 좋았다.
유 : 세트가 커져서 관객과 더 밀접하게 닿게 됐다. 예전엔 어느 정도 거리감 있었고 앞쪽 공간도 확보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바로 코앞이니 안 떨릴 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근데 얘들에겐 안 보인다. 숨겼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참 뻔뻔한 녀석들이다. 하하.
박 : 앞 공간이 좁은 것보다 곤돌라 안의 사각형 공간이 갑갑했다. 연출이 블로킹을 안 그어도 무대를 누비는 스타일인데 그 좁은 사각형 안에서 둘이서 지지고 볶고 하려니 힘들었다.
유 : 여태까지 <칠수와 만수>한 이래 이렇게 세트를 돌리는 건 처음이다. 우리가 가장 자부심 갖는 부분이다. 하하. 배경을 준 것도 처음이고.
박 : 노을 지는 서울의 모습이 좋다. 퇴장한 다음, ‘사노라면’ 노래 나올 때 무대는 암전이 된다. 그 때가 정말 압권이다. 그 어둠 속에서 해가 뜬다며 얘기하지 않는가.
진 : 우린 그때 무대 뒤편에서 찡해진다. 내일의 해가 뜨면 다들 아무 일 없었단 듯 일하러 갈 거고, 다시 작업하러 나올 테니까.
그 부분 카타르시스가 강하다. 그래서 배우가 개인적으로도 만족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박 : 보통 공연이 끝나면 ‘오늘은 왜 이랬을까’ 반성도 하는데 <칠수와 만수>는 아직까지 작품 끝나고 반성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오늘 최고였어’도 없으니 오해는 마라. 대신 우리는 매번 즐겁다.
진 : 연기한 배우도 마치 공연을 보고 나온 느낌이 드니까.
박 : 맞다. 사노라면이 나오면 ‘아 그렇지, 사는 게 그렇잖아’하며 그렇게 매번 끝낸다.
공연이 2주째에 가까워간다. 분위기는 어떤가. 작품 올라가고도 수정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박 : 그동안도 계속 수정해왔어. 공연이 내일 끝나더라도 고칠 게 있으면 고쳐야 한다.
유 : 깡통 떨어지는 부분 이후로 늘어지는 감이 있어서 줄여가는 작업을 했다. 이제 수정 안 해도 될 만큼 형틀이 잡혔다. 그리고 2차팀 연습도 시작됐다.
진 : 뒷부분의 늘어짐에 대해서는 마지막이다 싶게 압축했으니 캐릭터는 더 탄탄해지지 않겠는가. 2차팀은 또 다른 뭔가가 나올 거다. 일단 칠수와 만수가 다르니까. 곤돌라와 옥상만 그대로고 다 다른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하하.
이 호흡, 이 분위기라면 어느 작품이라도 못할게 없겠다. 추후에 또 같이 해볼 생각은 없는가.
유 : 우리 팀이라서가 아니라 이인극에서 두 사람이 이런 호흡 보여준다는 건 찾기 힘들다. 이런 팀도, 배우도 만나기 쉽지 않다. 배우간의 배려, 존중이 좋다.
박 : 누가 이렇게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조명실 막내까지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다. 연습하면서 한번도 큰소리가 나온 적이 없다. 팀워크는 그동안 해본 중 최고가 아닐까. 선규는 가진 게 좋다. 몸도 쓰지, 노래도 하지, 연기도 잘하지. 하하하. 어디 가서 추천하기도 좋지 않은가.
진 : 행복하다. 연습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 : 이번 작품하고 나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것보다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되어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혹시 모르지. 또 함께 무대에 선다면 더 환상적인 호흡이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