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리고 ‘풍수지탄’

입력 : 2007.05.07 18:13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여성에 의한’'여성을 위한’ 연극 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산울림 극장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가 4월 12일부터 5월 27일까지 공연된다. 모녀 관객에 대한 할인 서비스, 배우와 같이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소극장만의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고 있다. 특히 박정자라는 대배우의 완숙한 연기, 아니 이제 연기를 떠나 너무나 자유롭게 역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박정자의 연기는 연극을 관람한 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전 세계 아기들이 알게 되는 첫 단어, 엄마!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 쓰여 지던 비슷한 감정을 자아낸다!


고등학교 시절 산울림 극장에서 마샤 노먼의 <잘자요 엄마>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었다. 배우 손 숙과 정 경순 모녀의 연극은 딸이 엄마에게 자살 통보를 하면서 시작되었던 연극이었다. 삶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간질병에 걸린 딸은 너무나 담담하게 다락방의 권총을 찾아, 자살을 준비하고 감정하나 없이 나른한 기계처럼 엄마에게 자신이 왜 자살을 해야 하는지 납득 시킨다.


엄마는 정확히 연극이 진행되는 60여분 동안 딸의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연극은 딸이 자신에게 쏘는 권총 소리로 끝난다. 자살해야겠다고 왜 자살해야하는지 너무나 합당하게 우리 엄마, 한국의 엄마들에게 설명한다면, 아마 우리네 엄마들은 호된 욕을 퍼붓거나 한 대 치면서 호통을 치고 야단을 쳤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자살을 통보하지는 않지만 자살하는 딸들은 많이 있다.


마샤 노먼의 <잘자요 엄마>는 진정한 의사소통이 단절된 현대 사회에서의 엄마와 딸이란 가족으로부터 죽음 이란 것을 매우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연극의 이야기 방식에서는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결국 그것이 다루는 소재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사소통 불능의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냉정하고도 슬픈 죽음 말이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역시 드니즈 살렘이란 프랑스 작가의 원작에서 비롯되었다. 밥과 찌개 김치 대신에 스테이크, 와인, 나열되는 프랑스식 이름, 바게트, 치즈 등이 등장 하지만 이 연극의 어머니는 비단 우리네 엄마들과 다를 것이 없다. 늘 먹을 것을 챙겨주고, 먹이려고 하는 엄마, 자식을 곁에 두고 언제까지나 보호 하려는 엄마, 그럼에도 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엄마, 딸의 발을 씻겨주고, 언제나 돌아와도 가슴 열어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 그런 엄마의 모습은 늘 곁에 존재하기에 딸들은 금세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외롭고 싸늘한 주검 앞에서 잡히지 않는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시장 물가가 어떤지, 자신을 떠나 미국으로 떠난 무정한 아들 얘기며, 딸의 선물인 드레스를 받고 그렇게 행복하게 수다를 떨던, 나이 오십에서야 바다를 발견하고 그때서야 자식이 아닌 자신의 삶을 바라 볼 수 있을까 했지만 결국 텅 빈 집에서 ‘너무 외롭다’라는 말을 한마디 한 채 싸늘한 죽음이 되어버린 너무나 소중한 존재, 엄마는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있고, 많은 가족들은 엄마라는 커다란 행복을 참으로 쉽게 망각한다.

배우 지망생이 꼭 봐야할 박정자의 완숙한 연기

노래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름다워지고 완성되어진다고 한다. 연기도 꼭 이와 같은 것 같다. 성우로 시작한 연기생활이 벌써 60세 즈음이 된 배우 박정자의 연기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안정되었으며 실감나고 때로는 감칠맛이 나는 훌륭한 음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 글이 아니기에 많은 외국어가 나오는데도 그것이 전혀 이국적이지 않고 세련된 우리나라 감성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외롭고 슬프지만 그것을 홀로 감당해야하기에 더욱 밝게 살아가며, 때로는 딸을 걱정하기도 하고, 떠나가는 자식들 때문에 슬프지만 결코 자식들을 미워할 수 없는 엄마. 딸이 준 선물에 춤추듯 기뻐하고, 걱정을 시키는 딸에게 핀잔을 주는 엄마. 결국 모두가 떠나버린 텅 빈 거실에서 외치는 말
“너무 외롭다 ” 라는 대사 한마디에 모든 것을 농축시키는 배우, 박정자. 엄마가 오십에 바다를 발견한 것, 자식들의 대한 마음, 또 인생이라는 것. 배우 박정자가 입술로 토로한 이 대사 한마디는 걷잡을 수 없는 ‘아우라’를 전해줄 것이며, 그 말은 잔상과 잔흔처럼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 것이다.

엄마와 나 그리고 ‘풍수지탄’


나는 엄마가 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해왔고, 엄마는 내게 늘 이해할 수 없는 말만을 해왔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고, 심지어 숲속의 비구니가 되고 싶다고 침묵시위도 했으며, 사귀지 말라는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저절로 태어난 인생. 엄마는 엄마일 뿐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존재,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 신념을 엄마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때마다 엄마는 엄마의 언어로 나를 설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것은 늘 시끄러운 소음, 싸움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와 나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늘 합의점을 보았고 예나 지금이나 엄마 말을 들어서 나쁠 것은 하나 없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함께 존재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 엄마와 나는 함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보며 서로 화해했다. 그리고 난 ‘외롭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 엄마의 모습에서 ‘풍수지탄’ 즉 아무리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는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고사 성어를생각 하며 눈물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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