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불어넣은 활기, 인도네시아의 아트 에코시스템 [1편]

입력 : 2025.11.05 15:10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시장 너머, 협업의 힘   글로벌 미술시장은 작년을 기준으로 중국 시장의 31% 급락과 초고가 작품 거래 위축으로 인해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12% 감소하며 침체를 겪었다. 한국 미술시장 역시 2년에 걸쳐 두 자릿수 하락을 기록하며, 공공 지원 정책의 우산 아래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를 회복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글로벌 경기 침체의 거친 흐름에도 큰 낙폭 없이 순항중인 곳이 있으니, 바로 인도네시아다.
“Rising Current” presented by National Talent Management for Arts and Culture (MTN Seni Budaya)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Rising Current” presented by National Talent Management for Arts and Culture (MTN Seni Budaya)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자카르타 지엑스포 케마요란에서 10월 3일부터 5일까지 개최된 2025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는 16개국 75개 갤러리가 참여, 약 3만 8천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전년도와 대비하여 관람객은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참여 갤러리 수는 늘었고, 기대를 낮추고 참여했던 해외 갤러리들은 예상보다 괜찮은 성과를 얻었으며, 로컬 갤러리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전시작품 모두 판매가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ROH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by Maruto Ardi Courtesy of ROH and the artists
ROH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by Maruto Ardi Courtesy of ROH and the artists
 
그 비결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인도네시아가 가진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 규모와 방대한 인구기반을 꼽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컬렉터와 작가 커뮤니티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미술 생태계는 작품 거래의 장을 넘어, 작가와 컬렉터, 기업과 관람객이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협업의 장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아트 에코시스템, 그 지속가능한 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알아보자.
 
Srisasanti Galle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Srisasanti Syndicate
Srisasanti Galle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Srisasanti Syndicate
 
기업 예술 후원의 새로운 모델   아트 자카르타의 기업 후원 프로그램은 한국 미술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아트 페어의 기업 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외작가 모시기, 현금 후원과 로고 플레이, 셀럽 파티와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후원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작가들과 함께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파트너로서 직접 참여하며, 관람객에게 흥미로운 문화 경험을 선사하고 지역 예술계와 상생하며 브랜드 프로모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Agus Suwage, "Self-Portrait and the Theater Stage" (2019-2022) presented by Bibit & Stockbit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gus Suwage, "Self-Portrait and the Theater Stage" (2019-2022) presented by Bibit & Stockbit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인도네시아의 대표 투자 플랫폼 비빗/스톡빗(bibit/Stockbit)은 작가 아구스 수와게(Agus Suwage)의 60점 자화상 시리즈 ‘Self Portrait and the Theater Stage’와 연계된 ‘미래 초상(Future Portrait)’이라는 실험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관람객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직접 그려보는 참여형 전시이다. ‘금융투자’를 인생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미래를 그리는 행위로 표현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과 금융, 자기정체성 그리고 사회 변화와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Azizi Al Majid and Nuri Fatimah, "Reserve of Care" (2025) presented by Treasu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zizi Al Majid and Nuri Fatimah, "Reserve of Care" (2025) presented by Treasu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귀금속 투자 플랫폼 트레저리(Treasury)는 설치미술가 아지지 알 마지드(Azizi Al Majid), 뉴미디어 작가 누리 파티마(Nuri Fatimah)와 함께 ‘Reserve of Care’라는 몰입형 인터랙티브 전시를 선보였다. 관람객은 미디어 부스 내부에 마련된 작품에 앉아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작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처럼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 요소들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가족의 핵심 의미인 보호와 돌봄을 환기시킨다.
 
Ricky Janitra, Lumiphona.Dat (2025) presented by iForte & iForte Energi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Ricky Janitra, Lumiphona.Dat (2025) presented by iForte & iForte Energi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또한, 인테리어 솔루션 기업 TACO는 제시카 수에키디(Jessica Soekidi)와 함께 일출을 표현한 뒤집힌 피라미드 설치로 자연과 인간, 공간과 예술을 연결하는 관객참여형 설치작품을 선보였고, IT 및 네트워크 인프라 기업 iForte는 작가 리키 자니트라(Ricky Janitra)와 함께 태양에너지 데이터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하여 환경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조명하는 사운드 작업으로 생태 예술과 기술 예술의 교차점을 보여주었다.
 
Jessica Soekidi, “New Horizon” (2025). Presented by TACO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t Jakarta.
Jessica Soekidi, “New Horizon” (2025). Presented by TACO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t Jakarta.
 
아트 자카르타의 모든 협업 프로젝트들은 관람객 참여를 중심에 둔 ‘공동의 창조 공간’을 지향하며,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자본, 미디어, 기술의 연대 방식에 대한 고찰을 보여준다. 각 후원사가 기획한 작품들은 기업의 정체성과 예술가의 비전이 긴밀하게 결합하며,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 사회 그리고 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지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아트 콘텐츠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을 바탕으로 한 협업은 기업에게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작가에게는 확장된 창작 기회를, 관람객에게는 색다른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모두가 상생하는 구조, 바로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아트 에코시스템을 구동하는 핵심이다.
 
Eko Bintang at Srisasanti Gallery,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Srisasanti Syndicate
Eko Bintang at Srisasanti Gallery,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Srisasanti Syndicate
 
컬렉터 커뮤니티가 만든 건강한 순환   2023년 필자가 자카르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아트 자카르타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아시아 컬렉터가 소장한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소장품 전시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그 곳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던 한 컬렉터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매년 아트 자카르타를 방문할 때마다 떠오른다. 인도네시아 전통복식을 갖춰 입은 그는 자신이 소장한 작품에 내포된 의미가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컬렉터들 사이에서 작가가 어느 갤러리에 픽업되어 작품가격이 얼마나 올랐고 2차 시장에서 어떻게 거래되는지는 대화의 주제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커뮤니티를 이끄는 컬렉터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과 사명감이 차세대 컬렉터에게 멘토 역할을 하고,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속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인도네시아 예술계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다.
 
ara contempora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a contemporary and the artists
ara contempora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a contemporary and the artists
 
이쯤에서 우리의 한국 미술시장을 한 번 돌아보자. 최근 몇 년간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만큼 빠른 성장을 경험했지만, 그 이면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자국보다 해외 갤러리 및 작가에 대한 선망이 높고, 옥션 인기 작가의 전시에 오픈런이 일상화되며, 작품이 단기 투자 상품처럼 리세일 시장에서(심지어 당근마켓에서까지) 거래되는 모습은 건강한 예술생태계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작품의 내용보다 시장 가격에 집중하는 풍토는 장기적으로 작가 커리어에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컬렉터와 예술계 종사자 모두에게 피로감을 안겨 종국에는 생태계를 고갈되게 할 것이다.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인도네시아의 컬렉팅 문화는 가파르게 성장한 한국미술시장에서 우리가 한동안 망각해 온 질문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왜 예술을 향유하는가?’ 이 물음은 예술의 존재 이유와 관련한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작품의 시장성은 간과할 수 없고, 인도네시아의 공동체 시스템이 전통과 사회구조가 다른 국가에게 만능 열쇠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사례가 우리를 자각하게 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단기적 수익이 아닌 장기적 관계, 거래가 아닌 협업, 소유가 아닌 경험에 대한 가치를 중심에 둘 때 지속가능한 미래, 한국의 아트 에코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지 않을까? 
 
Vice & Virtue Galle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Vice & Virtue Gallery
Vice & Virtue Galle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Vice & Virtue Gallery
 
아트 자카르타로의 초대   2009년 런칭하여 매년 업그레이드를 거듭해온 아트 자카르타는 2026년에는 프로그램과 토크 세션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가장 먼저 Art Jakarta Papers(2월 5일~8일) 런칭을 시작으로, Art Jakarta Garden(5월 5일~10일), 그리고 Art Jakarta(10월 2일~4일)에 이르기까지 한 해가 꽉 찬 일정으로 라인업 되었다. artjakarta.com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일찍 알아본 한국의 기획자들과 함께 아트 자카르타에서 한국미술의 존재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백아트’, ’THEO’, ‘B-tree 갤러리’, ‘예술공간 집’, ‘Easelly’는 일찍부터 인도네시아 시장을 개척해왔고, 올해는 AJX 섹션에 ‘Korea Focus’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갤러리2’, ‘갤러리 SoSo’, ‘Pipe 갤러리’ 그리고 젊은 갤러리 연합부스가 외신기자단의 주목을 한 눈에 받았다. 이들은 현지 예술계와의 문화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있어 앞으로 자카르타에서 한국갤러리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선보일까 기대된다.
 
Ipeh Nur, "Ombak Belum Tidur" (2024) presented by ara contempora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a contemporary and the artist
Ipeh Nur, "Ombak Belum Tidur" (2024) presented by ara contemporary at Art Jakarta 2025, JIExpo Kemayoran. Courtesy of ara contemporary and the artist
 
인천에서 직항 항공으로 7시간 남짓 걸리는 자카르타 여행계획이 있다면,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일정을 잡는 것도 고려해 보길 추천한다. 이 기간 중에는 지역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특별 전시를 개최하고, 유익한 네트워크장과 관객 참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만약, 하루 일정을 더 비울 수 있다면 족자카르타의 작가 마을을 방문해봐도 좋겠다. 시장 너머, 협업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인도네시아의 아트 에코시스템. 그 생생한 현장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Art Jakarta. 3-5 October 2025, JIExpo Kemayoran. Photography courtesy of Art Jakarta
 
필자 약력
박수전은 독립 큐레이터이자 에디터다. 노블레스 컬렉션 디렉터로 재직(2019년~ 2024년)했으며, 노블레스와 아트나우 매거진의 에디터로 활동했다. 상하이 웨스트번드의 아트나우 라운지에서 열린 한국 미술전과 아시아 미술전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를 총괄했으며, 현재는 문화 기획 및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의 글로벌 교류를 확장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2편에서는 루앙루파의 25주년 기념행사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문화소비 세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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