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4.22 15:34

지난 3월 스코틀랜드의 한 미술관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흉상이 잼과 수프 테러를 당했다. 이러한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케이크 테러를,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씨 뿌리는 사람>은 수프 테러를 당했다. 환경 운동가들이 화석 연료 사용 반대와 식량문제 등 기후위기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벌인 일이다. 미술품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 더 빨리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유명한 작품의 명성에 기대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과격한 환경 운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누군가 격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디에선가 불균형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가 다가오고 있다. 기후변화 이야기다. 우리는 이미 지구의 시스템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급격히 환경을 망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명명해야 한다며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그만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으며 우리는 더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환경을 망치며 만든 것 중에는 당연히 미술도 포함된다. 예술은 분명히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전 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이조차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술에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을 위한 미술계의 행보
면죄부를 주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기하급수적인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국제적인 미술 행사들이다. 미술시장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는 운송과 이동, 폐기물 배출과 전력 소비 등이 있다. 특히 국제 아트페어는 세계 각지에서 작품이 항공 운송되고, 대규모 쓰레기가 발생하며, 수많은 관계자와 컬렉터가 이동한다. 일련의 과정을 두고 한 환경 운동가는 ‘전 지구적 서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트페어는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열린다. 아시아에서만 보더라도, 지난 3월 세계적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이 열렸고, 이달에는 서울에서 신생 국제아트페어인 아트오앤오가, 5월에는 아트부산과 대만의 당다이 아트페어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이 호황이 아니라 진단하지만, 그럼에도 행사 개수와 이동하는 인구는 훨씬 늘었다고 한다. 2020년 팬데믹으로 각 도시가 봉쇄되면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 것이 겨우 7%라고 한다. 매년 7%씩 2050년까지 지속한다면 우리는 탄소 중립에 도달할 수 있으나, 팬데믹이 끝나고 이동량이 많아진 지금 7% 조차 터무니없는 숫자다. 또한 국내 미술관의 대형 전시 하나가 끝나면 평균적으로 5톤의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국제 아트페어의 경우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발생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단 며칠의 행사를 위해 너무 많은 환경적 비용이 든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물론 미술계에서도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19년 영국의 테이트에서는 환경 문제를 다루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전시를 계기로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0% 이상 줄이고, 203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며, 폐기물 대다수를 재활용하고, 모든 출장은 기차 탑승을 최우선으로 하는 등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했다. 또한 2020년에는 런던의 갤러리와 기관들이 모여 ‘갤러리 기후 연합(Gallery Climate Coalition, 이하 GCC)’을 결성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과 아라리오 갤러리 등이 가입했다. GCC는 미술계에 맞춘 '탄소 감축 행동계획서'를 발간했는데, 기관 내에 환경을 위한 ‘녹색 팀’을 만들고, 매년 탄소 예산을 짜고 운용하는 법 등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미술산업에 맞춘 탄소계산기를 자체 개발하여 회원들에게 제공하며, 주요 미술보험사에 비항공화물 운송에 대한 보험을 확대하도록 로비를 진행한다. 또한 2021년 프리즈 런던에 부스를 차리고 기후 활동의 중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GCC에는 아트바젤과 프리즈 등의 주요 국제 아트페어, 그리고 미술시장의 주축인 가고시안과 하우저앤워스 등 글로벌 갤러리도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최소 50%까지 줄이기로 서명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하우저앤워스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별도의 연구소를 설립하고 운송과 물류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및 비용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 외에 작품 포장 전문 기업 록박스(RokBox)는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개발했고, 일부 미술품 운송사는 같은 도시 내의 운송건을 한 번에 모아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시도한다. 국내에서는 작년 키아프 서울, 예술경영지원센터, 프리즈 서울이 공동 주최하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미술계의 기후변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바 있으나, 아직까지 변화는 미미한 편이다. 그나마 미술관에서는 선제적인 움직임이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미술관이자 생태 미술관’을 미술관의 중장기 비전으로 발표했으며, 같은 해 <미술관-탄소-프로젝트>를 열고 큐레이터, 예술가, 기후학자, 관련 업체 등이 모여 당면한 문제에 관해 고민했다. 그 외에 부산현대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 미술관> 등에서는 기후위기를 주제로 전시를 선보이는 동시에 재활용 가능한 모듈벽 사용, 미디어 작품의 전력 사용량 측정, 작품 해상 운송 이용, 리플렛 온라인 배포, 잉크 낭비와 비닐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디자인 연구 등 실질적인 행동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이 실제로 얼마나 탄소배출을 줄이는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수많은 전시는 재활용 불가능한 가벽을 세워 폐기물을 만들며, 폐자재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낫다고 하기 어렵다. 또한 최근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의 규모가 커지면서 각종 브랜드 부스를 만들며 더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페어장 안팎에서 파티나 홍보 행사가 벌어지며 불필요한 이동을 발생시키고 있다. 게다가 후원사들의 환경윤리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일각에서는 미술계의 행보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아트페어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우리는 숨만 쉬어도 탄소를 배출하는 존재이므로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 탄소배출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물감과 같은 화학 제품, 미디어 작품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 등이 환경오염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종종 작업에 회의를 품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예술 작품에 가치를 두는 그것이 사회의 변화를 끌어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감수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이익을 견주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약간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대신 예술의 힘에 조금 더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기후위기 앞에서 예술이 그런 명분으로 존속할 수 있다면, 이제 거대한 미술행사는 어떤 명분을 가져야 할까. 비엔날레와 같은 비영리적 행사의 경우 기후위기를 의제로 삼거나 관련 주제의 작품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관객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명확히 일깨우며 빠르고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전시장에 설치된 인공해변에서 오페라 가수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노래했던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의 <태양과 바다(마리나) Sun and Sea(Marina)>,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서 열린 기후범죄 재판소 등은 비엔날레가 여전히 존속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아트페어는 어떨까? 관객에게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 있어서 아트페어가 비엔날레나 전시보다 더 유용한 방편은 아닐 테다. 물론 좋은 작품을 선보이거나 담론을 나눌 자리를 마련할 수는 있겠으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면 여전히 아트페어 개최보다는 탄소배출 절감 쪽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술계가 팬데믹으로 인한 침체기를 겪는 사이 아트페어는 온라인 뷰잉룸과 판매 플랫폼을 만드는 데에 힘썼을 뿐,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서 벌어지는 기후위기 대응책에 상대적으로 무심한 태도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트페어는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대형 미술 행사로서 미술계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으므로 일정 부분에서 공적인 역할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행보에 대해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아트페어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앞서 언급한 ‘인류세’와 같이 현 시대를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로 ‘자본세(Capitalocene)’가 있다. 자본주의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회피가 현 사태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세계 산업과 경제 주체들이 먼저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트페어와 같은 국제적 미술행사 역시 자본으로 인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것을 위해 막대한 탄소를 배출했다면 이제 변화를 위해 행동할 차례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려함의 이면을 들출 필요가 있다. 아트페어를 치르는 데에 발생하는 폐기물과 탄소량은 물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면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토론회나 특별전을 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운영기관 내에 환경 전문가나 팀을 구축하고 환경 비용을 운영비에 포함시키며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필연적인 이동으로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면 지역 미술시장 교류, 해당 지역 신진작가 발굴 등 명분을 더 만드는 행보도 필요하다. 단순하게는 상업 자본이 유입되며 증가한 브랜드 이벤트, 파티와 같은 과시적 행사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겠다.

물론 국제 행사에서 가장 많은 탄소배출량을 차지하는 것은 운송이며 이 중에는 컬렉터와 관객의 이동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달라져야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 앞서 언급한 미술품 테러는 대중이 미술에 갖는 관심과 사회적 파급력에 기댄 사례다. 확실히 미술은 사회의 각계각층에 호소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 또한 이 키를 가지고 적재적소에 개입하여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는 데에 국제적 행사의 영향력은 큰 힘이 될 테다.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언젠가는 화려한 미술 행사보다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 윤리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더 멋지다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지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따라간다. 변화의 대열에서 슬쩍 뒤로 물러나 화려한 상업 행사로 남을 것인가, 국제적인 의제를 앞장서 주도하는 선구적 행사가 될 것인가. 손에 쥔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는 이제 가진 자의 선택이다.

올해 광주 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정된 세계적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책 『플래닛 B: 기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이안북스, 2023)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가지는 태도를 ‘새로운 숭고’라고 부른다. 과거 칸트가 이야기한 ‘숭고’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면, 부리오가 말하는 ‘새로운 숭고’는 두려움과 공포에 가깝다. 우리 앞의 자연은 이제 어떤 재난이 되어 닥칠지 모르는 불길한 시한폭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치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모두에게 당면한 과제다. 지구와의 화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제시한 ‘툴루세(Chthulucene)’의 태도를 떠올린다. 지구상에 있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기억하며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함께 가자는, 이 시대를 위한 제언이다. 사실 국제적인 미술 행사가 야기하는 문제는 미술계의 모두가 관련되어 있다. 영국의 거장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가 아트페어의 자원 낭비에 대해 강력한 변화를 촉구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아트페어의 수혜자라고 인정하고 반성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태를 직면하고 함께 구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이 그렇듯 미술은 지구에 유해하다. 아트페어와 같은 거대한 미술 행사는 확실히 유해하다. 그러나 이를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기후변화를 위해 더 빠른 변화를 선도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의 목적이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라면 탄소배출의 이익을 비교하며 더 효과적인 쪽으로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유해한 미술은 역설적이게도 유익한 힘을 가진다. 미술이야말로 대립이 아니라 화해를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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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문화예술비평지 '크리티크M'의 편집위원이며, 미술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맨 노블레스', '핔' 등의 필진으로 있으며, 그외 다수 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라디오와 강의 등 동시대 미술과 대중을 잇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쓴 책으로 '필연으로 향하는 우연', '반짝이는 어떤 것', '보통의 감상', '마리나의 눈' 등이 있다. 2016년 그래비티 이펙트 미술비평공모에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와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문화예술비평지 '크리티크M'의 편집위원이며, 미술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맨 노블레스', '핔' 등의 필진으로 있으며, 그외 다수 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라디오와 강의 등 동시대 미술과 대중을 잇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쓴 책으로 '필연으로 향하는 우연', '반짝이는 어떤 것', '보통의 감상', '마리나의 눈' 등이 있다. 2016년 그래비티 이펙트 미술비평공모에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