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물멍 말고 갤러리에서의 ‘꽃멍’… 제니퍼 스타인캠프展

입력 : 2020.09.28 23:33

거칠게 요동치는 나무, 우아하게 흩날리는 꽃…
“실제보다 더 실감 나고 몰입감 넘치는 자연”
개인전 ‘Souls’, 리안갤러리 서울·리만머핀 서울 동시 개최
10월 31일까지

 
타닥타닥 타는 불을 바라보는 ‘불멍’, 조용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물멍’, 한적히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바로 ‘꽃멍’. 요즘 현대인의 휴식이라면 온종일 보는 핸드폰과 컴퓨터에서 한발짝 물러나 자연 풍광을 보며 멍때리는 것일 테다. 교외로 나갈 필요 없이 서울에 마련된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62)의 작품 앞에서 꽃멍때리며 힐링할 수 있다.
 
Still-Life 4(2020), Still from HD video installation with color dimensions variable /리안갤러리
Still-Life 4(2020), Still from HD video installation with color dimensions variable /리안갤러리
 
스타인캠프는 꽃, 나무, 과일 등 자연을 소재로 해 3D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한다. 움직이는 유기체 혹은 추상적 형태를 최신 기술을 활용해 렌더링하는데, 디지털 미디어로써 자연환경의 드러나지 않은 복잡성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작가는 “우리가 자연에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의 능력에 매료됐다”고 설명한다.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실제보다도 더욱 실감 나고 몰입감 넘치는 자연을 구현해내, 마치 최면에 걸듯 보는 이를 매혹한다.
 
특히 과일이 둥둥 떠다니는 형상의 <Still-Life 4>는 지난 5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수평의 축’ 전시장 입구에 설치됐던 작품과 동일한 연작으로, 국내 미술애호가들에게 익숙하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꽃잎이 우아하게 떠다니는 모습에서 풍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는 작가가 17세기 플랑드르화파의 바니타스 정물화에 영감을 받아 전통적인 정물화를 21세기 디지털로 재해석한 것으로, 삶의 허무, 인생무상이라는 바니타스 정물의 형식을 깨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생의 환희를 담고자 했다. 전 세계를 장악한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현대인에게 활력과 희망을 선사하는 듯하다.
 
Judy Crook 12(2019), Still from HD video installation with color dimensions variable 설치 전경 /리안갤러리
Judy Crook 12(2019), Still from HD video installation with color dimensions variable 설치 전경 /리안갤러리
Blind Eye 4(2019),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설치 전경 /리만머핀
Blind Eye 4(2019),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설치 전경 /리만머핀
 
나무는 스타인캠프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다. 부드럽게 때론 거칠게도 요동치는 나무는 열매를 맺었다가도 이파리를 흩날리며 겨울잠에 빠지기도 한다. <Judy Crook 12> <Judy Crook 14>은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무를 사실적으로 렌더링한 것으로, 자연의 변화를 시간을 빨리 감기해 바라보는 것 같다. 나무의 삶을 통해 관람자는 단 몇 분 만에 1년을 경험하며 삶의 순환성과 무한한 존재의 이상을 느낄 수 있다.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정면으로 마주한 장면을 묘사한 <Blind Eye 4>는 마치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환시를 연출한다. 거대한 나무들이 흔들리며 잎사귀들이 가볍고 부드럽게 흩뿌려지며 보는 이의 마음도 감싸주는 듯하다. 잎이 나고 자라며 계절의 변화를 암시하지만 영상의 시작과 끝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자연의 생명력, 순환 그리고 영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뜻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품 <Primordial, 1>에서 이는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데, 알 수 없는 작은 생물과 식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산소 방울이 위로 상승하는 생명력 넘치는 수중 생태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담았다. 중간중간 번뜩이는 빛의 섬광은 생동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감은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Primordial, 1(2020),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리만머핀
Primordial, 1(2020),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리만머핀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영상미디어 설치 작가 스타인캠프가 신작과 대표작으로 꾸린 개인전을 리안갤러리와 리만머핀 각각의 서울 브랜치에다 동시에 차리고 관객을 맞고 있다. 리만머핀 소속 작가인 스타인캠프가 리안갤러리에서도 전시를 열게 된 배경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안갤러리를 통해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가진 스타인캠프는 이후 2014년 두 번째 솔로전을 서울 지점에서 가진 이후, 이번에 다시 리안과의 세 번째 인연을 이어가게 된 것. 스타인캠프가 각기 다른 작품을 서로 다른 두 전시장에서 내건 만큼, 두 갤러리를 모두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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