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큐레이터가 바라보는 동시대 사회와 미술

입력 : 2019.09.05 15:22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시민큐레이터’ 전시 개최

오늘날의 시민은 예술가와 수용자의 관계를 포괄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을 의미하며 시민들은 누구나 전시를 통해 사회, 역사, 기술, 현상에 대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시할 수 있다. ‘시민’과 ‘큐레이터’는 역사적으로 상반된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인식돼 왔지만 동시대 문화 예술의 현장에서 더 이상 시민은 수용자에 한정된 개념은 아니다. 동시대 사회를 살고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시각예술언어를 통해 자신과 주변의 역사, 삶의 문제, 현상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큐레이토리얼의 실천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김수하 기획 ‘O BRAVE NEW WORLD’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김수하 기획 ‘O BRAVE NEW WORLD’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은 ‘여럿이 만드는 미래, 모두가 연결된 미술관’이라는 비전하에 시민들이 모여 자생적인 문화의 장을 만들어나가는 <서울시민큐레이터>를 운영해 오고 있다. 2015년부터 진행된 <서울시민큐레이터>는 미술 전공자를 비롯하여 미술에 관심이 있는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큐레이터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육의 수료생 중 10명을 선발하여 전시 기획과 개최를 지원한다. 올해 시민큐레이터는 수용자와 큐레이터의 관계를 내려놓고 ‘시민’에 내포된 다양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2019년 제5기 10명의 서울시민큐레이터는 교육 수료 후 전시기획 공모를 통해 선발된 이들로, 미술, 문학, 연극, 디자인, 철학 등의 다양한 전공 이력과 미술 전공생, 대학생, 구직자, 경력 단절자, 주부 등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된다. 선발자에게는 전시 지원금과 함께 자문 프로그램, 실무 워크숍을 지원했고, 그 결과로 10개의 전시가 SeMA 창고에서 이달 10일부터 11월 17일 사이 개최된다.
전예진 기획 ‘서울, 우리들의 거리는’ 중 Noe Alonzo作 < Seoul Cyberpunk Timelapse > 영상 2분51초 /서울시립미술관
전예진 기획 ‘서울, 우리들의 거리는’ 중 Noe Alonzo作 < Seoul Cyberpunk Timelapse > 영상 2분51초 /서울시립미술관
10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조영미의 ‘마음의 시선, 지금 나와 마주하다(Art, Talk, Create)’는 지역 사회에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시민작가와 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재능기부 작가의 활동을 소개한다. 조영미 시민큐레이터는 시민작가와 재능기부작가의 수평적 소통을 미술계의 문화로 확산시키고 즐기는 삶과 향유하는 미술의 현장을 접목시켜, 시민 상호간의 다양한 소통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같은 기간 열리는 전예진의 ‘서울, 우리들의 거리는’ 서울에 만연한 간판에 스며든 사회의 모습을 들춰낸다. 간판을 다룬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통해 도시환경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의 간판의 존재를 인식함과 동시에 간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26일부터 10월 6일까지는 김지현의 ‘하이브리드 아티스트’가 개최된다. 전시타이틀은 예술가이면서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생활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예술 작업과 또 다른 영역에서의 직업을 병행하는 사람들 즉, 하이브리드 아티스트의 작품을 통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예술 활동을 위한 또 다른 삶을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술과 삶의 균형인 ‘워아밸’(work-art balance)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같은 기간 꾸려지는 김수하의 ‘O BRAVE NEW WORLD’는 점점 더 빠르게 허물어지고 점점 더 높이 쌓아 올려지는 도시의 현실은 그 어떤 SF영화보다도 비현실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환상 속에 가려진 일상의 기괴함을 알리기 위해 전시는 관객에게 일상을 가공하여 재현한 또 다른 꿈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그들이 현재 꾸고 있는 꿈이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10월 9일부터 20일까지 장민지의 ‘SeMA창고 개관 4주년 기념전: 큐레이터 장라희 회고전’과 박미정의 ‘미메시스의 서고, 에크리튀르’가 열린다. ‘큐레이터 장라희 회고전’은 가상의 인물인 큐레이터 장라희를 통해 한국의 미술현장에서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혹은 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문제를 가상의 인물을 통해 허구로 드러내고자 한다. ‘미메시스의 서고, 에크리튀르’는 필사(筆寫)로 쓰기의 미메시스를 실천해온 디자이너, 김영기와 차정인의 오랜 서고로 들어가 작가의 내밀한 텍스트를 직접 읽고 쓰고 경험하는 전시다. <사유지도>와 <심각心覺한 놀이>라는 차별적이고 상이한 감각의 언어가 쓰기를 매개로 상응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의 삶-쓰기 또한 가능할 것이다. 
한윤아 기획 ‘서재의 유령들’ 중 김지평作 <카르밀라(Carmilla)>(좌) 150x55cm 비단족자, 혼합재료 2019, <레베카(Rebecca)> 160x55cm 비단족자, 혼합재료 2019 /서울시립미술관
한윤아 기획 ‘서재의 유령들’ 중 김지평作 <카르밀라(Carmilla)>(좌) 150x55cm 비단족자, 혼합재료 2019, <레베카(Rebecca)> 160x55cm 비단족자, 혼합재료 2019 /서울시립미술관
서준영 기획 ‘간식행사를 넘어서: 2010년대 대학 총학생회 아카이브’ 중 정아람作 < Peer to Peer, Woman to Woman > 디지털 비디오, 휴지, 나무 구조물 2017~2018 /서울시립미술관
서준영 기획 ‘간식행사를 넘어서: 2010년대 대학 총학생회 아카이브’ 중 정아람作 < Peer to Peer, Woman to Woman > 디지털 비디오, 휴지, 나무 구조물 2017~2018 /서울시립미술관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개최되는 김예지의 ‘초-극적 단상’은 무대미술은 미술 작업으로서 전시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다.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통해 무대미술이 '미술'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극적 조건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극과 극장의 제한을 뛰어넘는, 초-극적(超劇的) 무대 위(壇上)에 대한 상상은, 화이트 큐브에 온전히 자리 매길 수 없던 무대미술을 위한 초극적 아이디어(斷想)이자 구체적 제안으로 확장된다. 같은 기간에는 한윤아의 ‘서재의 유령들’도 함께 열린다. 텍스트에 어려 있는 비-동시적인 얼룩을 발견하고 가려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시 옮겨지고 확산된, 때로는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혹은 여섯 번째 감각으로만 알아챌 수 있는 작업들이 과거 시약창고의 선반을 그대로 둔 채 만들어진 SeMA창고의 장소성과 어우러진다.
11월 6일부터 11월 17일까지 백필균의 ‘당신의 처음이 제가 아니기를’, 서준영의 ‘간식행사를 넘어서: 2010년대 대학 총학생회 아카이브’가 열린다. ‘당신의 처음이 제가 아니기를’은 전시장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전제로, 또는 대상으로 한 작업들로 구성된 전시다. 전시는 일부 작업들이 전시장의 부분들이 지닌 형태 또는 기능을 차용한 설정을 드러낸다. 전시를 하나의 구조체로 살펴보는 시선에서 문화공간으로서 전시장이 지니는 교육적·의례적 맥락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그 다음’ 도래할 전시 패러다임 및 관람문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간식행사를 넘어서: 2010년대 대학 총학생회 아카이브’는 ‘학생회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 약 2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2010년대의 대학 총학생회는 무엇을 해 왔는지 탐색한다. 작가들은 2010년대 학생회를 둘러싼 시대상황·담론을 드러내는 작품을 선보이며, 기획자는 학생회 기록물을 모아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