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04 17:00
‘고스트 씨티’展, 29일까지 플레이스막 연희, 스페이스55
도시에는 사라지는 장소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라진 것은 과거가 되고, 상실과 부재로 다시 도시의 현재에 새겨진다.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것, 마치 유령처럼 과거의 현존이 부유하는 ‘유령도시’와 같다. ‘고스트 씨티’전(展)은 쉼 없이 해체되고 재생되는 현대도시를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시의 장소에 개인과 사회가 쌓아온 중첩된 기억을 이야기한다.

도시의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온 아티스트 그룹 리슨투더시티의 <도시 목격자>(2017)는 2000년대 이후 해체돼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다섯 감독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그들이 목격한 도시는 거듭되는 재개발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기록한 이야기를 통해 도시 문제를 다시 돌아본다.
건축가 이주타와 도시연구가 최호진은 구술 영상, 기록 사진, 드로잉으로 지난 십여 년간 수집해 온 이 도시의 건축 자산과 동네의 변화를 살펴본다. 이들은 골목길의 풍경, 건축물을 관찰하고, 수많은 변화를 겪는 동안 사라진 것과 아직 남아있는 것에서 이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읽는다.
김희연은 통해 재개발의 바람으로 인해 주거인이 떠난 집과 아직 누군가 주거하고 있는 집이 공존하는 동네에서 덧붙여진 인공구조물이나 임시적으로 설치된 건축물 또는 한 장소에 버려진 것과 사용되는 것이 섞여 있는 기묘한 풍경을 포착해 화폭에 담는다.

조준용은 서울의 어느 특정 장소의 과거 사진을 순환도로에 영사해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량에 남겨지는 잔상을 촬영한다. 과거의 장소가 영사되는 순환도로 너머에는 현재의 장소가 있다. 과거의 아파트는 현재의 아파트로 대체됐고 저층 주택이 모여 살던 동네에는 고층 아파트가 세워졌다. 과거에 모던 사회의 상징이었으나 4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가 되어 철거된 정릉 스카이아파트처럼,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오히려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된다. 장소는 더 이상 고정된 것이 아닌 비-장소로 존재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영상작업 <원더 시티 1997>(2019)로 확장됐다.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하는 컴퓨터 게임 '심시티'를 이용하여 현대도시 서울을 재현하면서, 건설과 파괴라는 행위를 더한다.
일본 작가 오카마츠 토모키는 <변화하는 거리의 윤곽>(2018)을 통해 구마모토 대지진 이후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관찰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 도시의 건물들은 지진 후 안전관리지침에 따라 하나씩 철거되고 있다. 지진 피해를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은 도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도시에는 마치 썩은 이가 군데군데 빠진 것처럼 갑작스럽게 공터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재개발 사업이 가속화됐다. 과거의 건물들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과정을 몇 년째 겪고 있는 이 거리의 장소에서 작가는 현재의 일상이 사라져가는 과거의 일상과 중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재욱은 이 도시의 어느 장소에 거듭해서 발생했던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한다. 광화문 앞 그곳에는 오늘도, 몇 년 전에도, 십 년 전에도, 수십 년 전에도 통제 라인-차벽이 세워졌다. 한 장소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경계선이 세워지고 허물어짐을 반복한다.
전시는 4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로 플레이스막 연희, 스페이스55에서 동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