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7.19 09:00
기민정, 신이피, 이병찬, 이채은 등 젊은 작가 16인의 신작
9월 28일까지 송은 아트스페이스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9월 28일까지 <Summer Love: 송은 아트큐브 그룹전>을 개최한다. 구은정, 기민정, 김준명, 김지선, 박희자, 송기철, 신이피, 오제성, 이병찬, 이정우, 이주원, 이채은, 유영진, 양승원, 한상아, 황문정 등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공모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가 16인의 신작으로 꾸려지는 이번 전시는 이들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임으로써 이들의 성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전시타이틀 ‘Summer Love’는 젊은 시절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집중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그래서 헤어진 후에도 가슴 한구석 아련하게 남아있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는 ‘전시’와 관계하는 모든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수반된 모든 시간과 여러 관계는 그렇게 지난 시간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다시 현재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잠재해 있다. 그리고 다시 또 그 다음의 전시를 마주하며 다음의 시간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시간이 얽히고설킨 얼개로서의 전시, 그리고 그 토양에 대한 강박적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다양한 주제 의식과 매체를 다루는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젊은 작가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동시에 그들 창작의 실현 토대인 전시의 시간을 함께 고민하며 거니는 자리가 될 것이다.
도예를 전공한 김준명은 ‘전통’에 대응하여 우리에게 학습된 인식을 의문시하고, 공예와 현대 미술의 간극에 고정된 시선과 사고의 초점을 뒤튼다. 작가의 작업은 흙과 도예라는 특정 물질과 장르적 언어를 바탕으로 독특성을 지니게 된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과 섣부른 시선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오히려 작업의 시발점으로 삼거나, 때로는 소외된 노동이나 풍경에 주목하여 조금 다른 차원의 일상을 마주하게도 한다. 구은정은 개인이 마주하는 어떤 시간의 흐름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그녀는 자신과 타인의 시간이 마주치고 교차하는 양상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거나, 직접 겪은 어떤 순간들의 수평적 타임라인을 극도로 압축 또는 확장하는 방식으로 가시화한다.

김지선은 공간에 얽힌 기억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풍경을 낯선 어떤 상태-이미지로 제시한다. 특정한 때에 며칠간 머물렀던 풍경에 대한 기억은 해당 장소에서 채집한 영상, 이미지, 사운드를 경유함으로써 삭제와 중첩의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고, 회화적 표현을 통해 번역된 풍경으로 가시화된다. 이렇게 실제 풍경에서 (사운드, 영상, 이미지의 파편을 통해) 일부를 뜯어내어 재구성한 이미지는 새로운 시점을 확보한 어떤 정서적 상태로서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한상아의 작업은 자신이 경험한 일, 그리고 내밀한 색과 온도를 입은 기억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위와 같은 사적 차원의 기제를 통해 걸러진 평범하거나 일반적인 사건은 곧 화폭 위에서 보편과 사적 영역이 혼재되어 공존하는 모호한 풍경으로 드러난다. 최근 그녀의 작업은 여성으로서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며 나타나는 신체와 정서의 변화, 그리고 여성 작가로서 작업의 지속에 대한 문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병찬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과잉 생산과 소비를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그리고 과잉 욕망과 끊임없는 도시개발 등으로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도시의 풍경에서 비롯된 인간의 괴리감이나 소외 등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물건을 구매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비닐’이라는 재료는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적 위치와는 무관한 평등함의 지표이자, 소비 생태 안에서 스스로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는 무가치한 대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비닐을 주재료로 모종의 생물체, 그리고 그것이 숨 쉬는 어떤 환경을 창조해냄으로써 모든 것을 상품의 가치로 환원하는 현 사회의 물신주의적 풍조에 질문한다.


기민정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양극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를테면, 일상에서의 안주와 탈주,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 등 양극이 교차하거나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작가 고유의 서사는 즉흥적이고 가볍지만 날카롭게 부유하는 선과 이미지로 화면을 장식하곤 한다. 신이피는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를 일종의 긴장 상태로 인식하며, 이러한 상태 위에 구축된 사회의 질서와 규칙을 감각하고자 한다. 사회나 집단 안 개인이라는 미시적 차원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그녀는 ‘실험실’이라는 형식을 표방함으로써 젠더나 외모,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보다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시선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주원은 현실의 사건을 바탕으로 허구적 서사를 직조함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믿음의 메커니즘을 비판한다. 예를 들면, 뉴스를 짜깁기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영상을 통해 현실을 뒤틀거나, 일종의 루머로 점철된 서사를 도큐멘터리 방식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허구와 사실 사이의 간극을 헤집어 놓는 식이다. 이채은은 고전 명화나 영화, 대중문화에서 차용한 도상,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현실 사건의 이미지 파편을 추출하여 반복과 재맥락화를 통해 화면 위에서 재구성한다. 이러한 시도는 원래의 이미지를 기존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서사를 수용하게 하며, 구성된 화면은 사회적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이미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집단의식이나 행동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정우는 실체 없는 효력이 빚어내는 실질적인 현상에 주목하고, 허구와 실재를 조작하는 영화적 메커니즘을 차용하여 현실적 차원의 허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종종 사회, 역사, 정치적 이슈에서 시작하는 그의 작업은 기존의 피상적 결론에서 빗겨나 새로운 인식의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영상매체의 방법론을 경유하곤 한다. 양승원은 실재와 허구가 교차하는 시공간에 주목한다. 그는 도시 풍경에 존재하는 혼종적 환경을 추적하거나(Real and Figure, 2010),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것을 분류, 재조합해서 가상의 세트를 만드는 방식(해시태그, 2017)으로 본질이 부재한 실재를 닮은 풍경, 혹은 가상에 가상이 더해져 그 자체로 이미 실재를 초월하게 된 이미지를 담아낸다.



유영진은 자신의 내밀한 경험이나 기억을 경유하여 일상의 공적 공간을 사적인 장소로 치환하거나, 혹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할 모종의 시공으로 제시한다. 최근 작가는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다양한 생물체에 빗대어 도시를 구성하는 인공 시설물의 (도시 환경에 따른) 변이를 추적하고 기록하였다. 사진을 전공한 박희자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담는 (혹은 이미지가 담아내는) 물질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것의 변주를 통해 우리의 사고와 인식을 뒤틀고 새로운 사유가 가능하길 바란다.
오제성은 일상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다양한 관계에 집중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경유하여 그들이 엮이는 장소의 시간과 기억을 감각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정체성의 개인들이 모이는 특정한 가치의 시공간에 관해 얘기한다. 황문정은 도시나 특정 환경을 구성하는 다층적인 요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사용자의 양상을 살핀다. 그리고 그 요소들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비인간적(동물적, 식물적, 심지어 신체의 일부) 시선이 전제된 독특한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기존의 인간 중심으로 위계화된 삶의 방식과 생태를 유쾌하게 뒤튼다.
송기철은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폭력적인 규율과 규범, 억압과 차별 등을 다양한 형식을 통해 가시화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끝에서 두 번째 세계>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의 단단한 토양에 관해 얘기한다. 여기서 단단함이란 이 사회의 견고한 통제 시스템에 대한 은유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땅과 하늘의 사이, 비행을 통해 마주하는 간극의 영토에 주목한다. ‘비행’이란 권위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으며 하늘과 땅 사이의 간극, 일종의 공백과도 같은 이곳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결여의 영토이며, 끊임없는 투쟁을 위한 시공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