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가 기억하는 전통 신앙

입력 : 2019.06.24 17:31

장인과 현대미술 작가 협업해 단절된 전통 복원하고자…
‘신물지’展, 7월 25일까지 우란문화재단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진 민간신앙과 전통적 삶의 세계관을 한지로 제작된 종이 무구인 설위, 지화, 기메를 통해 한지의 신물적 특징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우란문화재단 기획전 ‘신물지(神物紙)’는 전통공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동시대적 가치를 가늠하며 오늘날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공감을 얻기 위해 마련됐다.
‘신물지’는 신성한 물건과 한지를 뜻한다. 한지는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인 관혼상제를 비롯한 금줄, 사주지, 지방과 같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해왔는데, 단순히 문자를 기록하는 수단이나 매체가 아닌, 신물로서 어떻게 세계관을 확장해왔는지 현대적 시각에서 되짚는다. 
이슬기(김영철 심방 협업)作 < CHUM > 25x60x120cm 철 2019 /우란문화재단
이슬기(김영철 심방 협업)作 < CHUM > 25x60x120cm 철 2019 /우란문화재단
한지는 질긴 특성 덕에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고 편리하지만 동시에 가벼운 소재이기도 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다루기 쉬운 소재인 종이를 활용해 초월적 존재나 근본적 두려움에 맞서는 형식을 구현해 온 셈이다. 이는 그 존재가 물리적인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인한 상념임을 인지하고 이로써 한지에 새겨진 문양과 글귀 그리고 형태로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고 직관적 감각을 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충남지역의 앉은굿 종이 까수기(오리기)의 ‘설위설경’ 이재선 법사, 종이꽃 ‘지화’ 정용대 장인, 제주 굿에서 쓰이는 ‘기메’ 김영철 심방의 종이 무구(巫具) 공예품이 소개된다. 더불어 장인들의 작품과정과 이들이 행하는 전통의례와 그 과정, 전환의 장소를 영상작업으로 보여주는 이유지아 작가, 또한 근대적 역사기술 방식에서 탈락되고 누락된 가치들을 구술문화의 방식을 차용한 설치작품을 구성한 이이난 작가, 제주신화와 역사 그리고 전통의례의 요소들을 회화로 그려낸 이진경 작가, 종이를 접어 오리거나 타일을 붙여 반복된 형상으로 독특한 도상을 만들어낸 김범 작가, 그리고 전통의 신화 혹은 이야기를 단순한 기하학적 조형으로 재현하는 이슬기 작가의 설치 작품이 구성된다.
공예적 특징을 가진 장인의 작품과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탈락, 왜곡된 전통 신앙과 세계관을 기억해내고 복원하는 이번 전시는 7월 25일까지 서울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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