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넜다”

입력 : 2019.06.19 21:51

[인터뷰] 케이트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미학적 담론의 부재? “없는 게 당연”
‘주변 관계 중시여기는 특성’… 서구에선 ‘선비적’이란 말보단 더 잘 먹힐 것

 
미술 칼럼니스트이자 큐레이터로서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케이트림(55). 그가 처음부터 미술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영문학과 출신으로 통번역사로 일하던 중 미술 평론을 번역을 맡게 되면서 미술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작가는 사활을 걸고 어렵사리 작업한 작품인데, 어이없는 오역으로 작품의 의미가 잘못 전달되는 사례들을 접하며 미술 평론 번역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오랜 시간 미술 저술가로 임해온 그의 가장 큰 화두는 작업과 담론, 작가와 관찰자(평론가)와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 방식과 예술 세계를 면밀히 관찰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기준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를 ‘소박한 글’이라고 하는데, 전문 비평가의 고도로 지적인 글을 지양하기 위함이다. 또한 관찰자의 관점을 벗어나 작가의 예술 세계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그는 단색화의 맥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전시 ‘다섯 가지의 흰색-한국 5인의 작가’의 서문을 쓰고, 박서보의 영문 평전 ‘PARK Seo-bo: from Avant-Garde to Ecriture’(2014)을 출간하는 등 단색화를 세계미술인의 언어와 시각에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단색화를 좀 더 현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 2016년 소규모 비영리단체인 아트 플랫폼 아시아(APA)를 설립했다. 케이트림은 국제 미술계에 단색화 붐이 일기 전, 박서보의 영문 평전을 출판했다. 이후 1년 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색화 열풍이 시작됐을 때, 그의 책은 박서보의 전 작업의 궤적이 상세하게 기록된 유일한 영문 책이었다. 어느덧 광풍 몰아치듯 미술시장을 점령했던 단색화는 이제 아트페어에서 자취를 감췄고 여기저기선 미학적 근거와 이론적 명제의 불분명함을 지적하는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단색화의 맥 찾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가 바라보는 단색화란 무엇인지 물어봤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케이트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단색화의 불분명한 이론적 명제에 대한 지적을 두고 그는 “작가와 작품이 생긴 다음, 담론이 붙는 것이라며 현재로선 이론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아트조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케이트림 아트플랫폼아시아 대표. 단색화의 불분명한 이론적 명제에 대한 지적을 두고 그는 “작가와 작품이 생긴 다음, 담론이 붙는 것이라며 현재로선 이론이 없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아트조선
 
─단색화 열풍이 시작된 때로 거슬러 가보자. 국제미술계가 단색화에 매료될 수 있었던 단초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
 
“단색화 1세대 작가들을 되돌아보면 그 당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젊은 작가들이었다. 보수적이거나 안전성을 추구하기보단 어떻게 재창조하고 재해석할 것인가 고민했던 이들이었다. 같은 시대, 서양미술에서는 개념미술이 판을 치며 ‘회화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말할 때였다. 서양미술 시각에서 보자면 당시 단색화 작가들은 후진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작가란 시대와 이론에 구애받지 않는 법. 그런 와중에 점차 서양미술이 비디오아트나 설치 등 개념 예술에 편향되면서 컬렉터들 사이에선 회화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예술의 소박한 본질에 대한 니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고된 노동에 의해 탄생되는 예술작품에 대한 동경이랄까. 이런 게 맞물리며 단색화가 어필할 수 있었다. 미술행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 컬렉터들마다 토로하는 불만 중 하나는 서양화가들 중엔 ‘화가’가 없다는 거다. 단색화는 수없이 겹쳐지며 농축된 재료가 이룬 물질적 토대와 작가의 노동력이 어우러진 작업이다. 이러한 특성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단색화의 근거를 두고 반론과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설득력 있는 미학이 뒷받침되지 않음을 한계로 꼽는 시각에 대해 반박한다면.
 
“미학적 담론이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미학적 담론이 먼저가 아니라 작가와 작품이 있고 이론은 그 뒤에 생기는 법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등장하게 되면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을 때가 있지 않던가. 단색화가 그런 사례다. 오히려 미학의 부재를 지적하는 건 그 말을 하는 이들 스스로가 직무유기를 인정하는 꼴밖엔 안 된다. 근거가 부족하다는 건 다른 사람도 아닌 평론가 입에서 나올 얘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하지, 담론을 만드는 이들은 평론가들이다. 
 
특히 자꾸 서양미술사 관점에서 미니멀리즘과 모노크롬에 빗대어 단색화를 판단하려고 하는데 서구의 틀을 갖고 와선 여기에 맞느냐 안 맞느냐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담론을 만드는 지적인 관찰자들, 즉 평론가들이 머리에 든 지식으로만 바라보니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단색화가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를 기점으로 세계 미술씬에 성공적으로 등장한 뒤,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고 유명 컬렉터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팩트이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과 같다. 아무리 뒷말이 많고 네거티브가 난무해도 단색화는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한다.”
 
─단색화를 설명할 때 한국 고유의 정신관과 세계관에서 비롯됐다고들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미학적 근거가 부재한다면 서구에서는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과 크게 다른 점을 인지하기 어려울 법한데.
 
“서양미술계는 자신들의 영역 밖은 잘 알지 못한다. 실제로 그들은 한국과 한국미술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이 불균형적이고 불공평한 현실을 먼저 인정하고 그들을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담론과 내러티브다. 단색화가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고 공식화돼 가고 있는 지금, 단색화의 담론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러다간 단색화가 훗날 ‘각주’처럼 될 우려가 든다. 서양미술사책에서 페이지 아래 작은 글씨로 표기된 각주 같은 존재로 ‘1970년대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단색화란 미니멀리즘이 나타났다’처럼 말이다.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란 표현은 선비 정신이나 자기 수양보단 딱 잘라 미니멀리즘이라고 설명하면 아무래도 조금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거란 마음에서 시작됐을 거다. 한국인을 제외하고 ‘선비적’이란 말뜻을 이해하는 인구가 세계에서 얼마나 되겠나. 작품을 설명할 때면 좁히려야 좁힐 수 없는 슬픈 간극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단색화를 손쉽게 동양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우환 선생이 그러더라. 서구 갤러리스트들에게 자기 작품을 설명할 때 동양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가 끝나버린다고. 동양적이라는 설명 뒤에 더는 진척될 이야깃거리가 없는 거다. 서양과 동양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건 벽을 쌓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실수와 오류를 피하기 위해선 서양미술계 입장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담론을 정립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작품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서구인에 비해 우리는 곱절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직은 단색화가 고유명사로 쓰일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으로 본다.”
 
─그렇다면 서양미술계에 단색화의 정신관과 미학적 근간을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언젠가 뉴욕타임스에서 ‘Lose Yourself’를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라고 배웠지만,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아니더라는 내용이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선 반대로 자아를 잠시 잊어야만 진정한 자기실현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개별주의에 대한 반성이었다. 나는 이러한 서양사회의 시각 변화가 단색화의 배경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단색화는 굉장히 노동집약적이고 물질과 물질이 만나 연금술적인 결합을 이뤄 완성되는 그림이다. 한지, 숯과 같이 서로 성질이 완전히 다른 물질이 뒤섞여 얽히고 서로 파묻히며 타협과 화해를 보여주는 거다.
 
이를테면 박서보의 단색화는 중성화(中性化)를 강조했다. 나 자신을 세계 속에 조용히 파묻고자 하는 온화한 정신관을 드러내는 데 몰두했다. 이는 나와 세계와의 화합, 타협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인만의 특성이 드러나는데, 주변 세계와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성향, 즉 자신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증류화된 자아를 내보이는 것 말이다. 선비적이고 동양적이란 이야기 이전에 위와 같은 설명이 앞선다면 서구인도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단색화의 미학적 토대 마련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단색화 1세대 작가 이후의 후세대 단색화를 ‘포스트단색화’라고 구분 지은 것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나.
 
“단색화의 맥을 잇는 작가와 작품을 얘기할 때 제작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테크닉, 기술과는 다른 건데, 오롯이 작가의 능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특유의 역량이 드러나는 제작 방법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반복된다거나 한 가지 색을 쓴다는 그런 얄팍한 특성만을 갖곤 절대 판단할 수 없다. 단순히 똑같은 화법(畫法)을 쓴다거나 시각적으로 비슷한 추상적 느낌을 주는 것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색화의 맥 찾기는 또 흐지부지될 것이다. 단색화라는 씨앗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와 해석을 꽃피운 작가들 전체를 복합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그중에는 작업 과정과 방법이 뜻밖의 변화를 겪은 작가들도 있다. 그런 작가와 작품들을 차별 없이 관찰해 단색화란 씨앗에서 여러 모양으로 다양하게 꽃피는 것을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단색화가 남긴 유산이 어떻게 계승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단색화에 대한 미학적 배경이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에 포스트단색화란 용어가 등장한 것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에 대해선.
 
“이름을 갖게 되면 그 이름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름 따라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포스트단색화란 용어가 좀 껄끄럽다. 단어 자체가 단색화의 ‘후예’를 직접적으로 지칭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또 다른 피상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는다. 단색화의 몇 가지 제작 방법을 짚은 뒤,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이름 짓는 건 단색화의 기반과 예술관을 박약하게 만들 뿐이다.”
 
─미술 저술가로서 한국 현대미술사를 기록하고 추적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양미술사는 내러티브다. 이해하기 쉽도록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데, 우리나라 미술도 그와 같은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됐다. 단색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보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이들 작가들이 발전해온 전 과정과 더불어 이전 세대까지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다.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땅에서 갑자기 솟아난 게 아니다. 그들의 독창성이란 알게 모르게 역사계승성을 바탕으로 해 발현되는 것이다. 단색화 하나를 얘기하더라도, 이전 세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작가들도 모두 면밀히 관찰해야 할 만큼 까다로운 과정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 복잡하고도 풍부한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단색화의 존재와 한국 현대미술을 부정하는 것밖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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