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거듭한 20세기 미술사, 또다시 낯선 예술을 향하여

입력 : 2019.05.27 17:00

“수직에서 수평으로, 평면에서 화면 밖으로…”
변혁 이끈 로버트 라우센버그,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등
현대미술 거장 12인 한자리에… ‘픽처 플레인’展 7월 10일까지 학고재

표현 방식과 매체가 변화함에 따라 예술가들은 다각도에서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연을 주제로 한 근대 회화가 전통적인 수직 방향의 화면을 고수한 것과 대조적으로 문명 시대의 예술가는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 눕혔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에서 드러나는 ‘평판화면’이 대표적인 예다. 화면의 위치 변화는 회화의 주제 이행과 연관해 일어났다. 화면은 자연이 아닌 ‘문화’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수평적 작업 화면은 대다수의 팝아트로 계승됐다. 관점의 변화는 인지의 범위를 확장했다. 회화는 평면을 이탈했고 조각은 중력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作 <얼음(19731981)> 20x43.5cm 리히터의 아티스트 북 『얼음』 표지에 사용된 카드에 래커 1981 /학고재
게르하르트 리히터 作 <얼음(19731981)> 20x43.5cm 리히터의 아티스트 북 『얼음』 표지에 사용된 카드에 래커 1981 /학고재
20세기 현대미술의 대표적 거장 12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프랑수아 모를레, 알렉스 카츠,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스털링 루비 등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대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선보이는 전시 ‘픽처 플레인: 수직, 수평의 화면과 움직이는 달’이 7월 1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세기를 관통하는 광범위한 시기의 작품을 포괄하기 위해 ‘화면’을 큰 주제로 삼는다. 작업 화면의 위치, 즉 예술가의 관점 변화를 단서로 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보려는 시도다. 작품의 화면은 예술가의 시각을 비추는 거울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창이기 때문.
독일 표현주의 그룹 다리파의 창시자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의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에서 인물의 모습은 대담하게 잘린 면과 분방한 필치로 그려진다. 원색의 대비와 감각적 구도가 심상을 드러낸다. 1912년 또는 1913년 앞면을 덧칠해 그리기 시작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작업을 중단했다가 1920년경 완성한 그림이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作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 60.7x40.5cm  캔버스에 유채 ca.1912-1913(20) /학고재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作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 60.7x40.5cm 캔버스에 유채 ca.1912-1913(20) /학고재
알렉산더 칼더作 <빨간 초승달> 60(h)x225x66cm 철판, 금속 막대, 물감 1969 /학고재
알렉산더 칼더作 <빨간 초승달> 60(h)x225x66cm 철판, 금속 막대, 물감 1969 /학고재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과 스테빌, 과슈 드로잉 등을 선보인다. 그의 움직이는 조각을 두고 마르셀 뒤샹이 ‘모빌’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균형적으로 유동하는 모빌 <빨간 초승달>과 더불어, 휴식하는 모빌이란 뜻의 스테빌 <더 클로브>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드 쿠닝을 비롯해 파리 시각예술탐구 그룹의 창립자 프랑수아 모를레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막을 연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자본주의 사실주의를 주창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을 선보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의 작품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1991년작 회화도 출품된다. 아울러 알렉스 카츠와 앤디 워홀, 스털링 루비,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도 눈여겨봄직하다.
프랑수아 모를레作 <테이블이 중심에서 3도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도 표시> 91.4x91.4cm 캔버스에 아크릴릭 1980 /학고재
프랑수아 모를레作 <테이블이 중심에서 3도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도 표시> 91.4x91.4cm 캔버스에 아크릴릭 1980 /학고재
지난 세기의 거대한 서사가 막을 내렸다. 종말을 예견한 미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결국 관점의 변화였던 셈이다. 21세기, 새로운 미술사의 서론이 쓰이고 있는 지금, 동시대 미술의 화면은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여든을 넘긴 데이비드 호크니는 오늘날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회화 도구로 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에 이번 전시는 지나온 미술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탐구를 지속할 자양분이 돼 줄 것이다. 
한편, 출품작 30여 점은 런던과 파리에서 활동하는 유명 큐레이터이자 소장가인 수잔 반 하겐과 그의 아들 로렌스의 컬렉션 ‘수잔 앤 로렌스 반 하겐 컬렉션’을 통해 선별됐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쿤스트삼룬겐 켐니츠에서 전시를 기획한 수잔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다니엘 퍼맨 작품 기획에 참여했으며, 팔레 드 도쿄(파리)의 후원자 모임인 도쿄 아트 클럽(파리)을 설립했다. 현재 아들인 로렌스 반 하겐과 함께 미술 자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