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13 15:44
임영균 초대전 ‘백남준, 지금 여기’, 25일까지 이길이구갤러리


1980년대 초반,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미국 뉴욕에서 백남준은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샬롯 무어먼 등과 교류하며 동서양 사상을 접목해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나가고 있었고, 사진작가 임영균(64)은 그런 백남준의 옆에서 함께하며 그의 순간순간을 기록했다. 뉴욕에서 만난 두 사람은 스무 살 넘는 나이차에도 타국에서의 동지애를 바탕으로 가깝게 지냈다. 임영균의 뉴욕 미술계 데뷔작이 백남준을 찍은 사진이었을 정도다.
“처음 선생님을 찾아뵈러 소호에 위치한 작업실로 갔던 날, 서툰 한국말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100평은 족히 될 만한 장대한 사무실 한 편에 있는 복잡한 전자기기와 비디오 모니터가 있는 방으로 안내해주시는데, 테이블 위에는 프랑스제 물과 맥주 등이 놓여 있었죠. 마실 것을 권하시기에 맥주는 한 병밖에 없어 이유를 묻자 자신은 당뇨가 심해 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첫 만남 이후 백남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미술계 행사에 작가를 데리고 가 소개시켜줬다.

1988년에는 임영균이 뉴욕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백남준은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타지생활에 지친 작가의 고집을 이기지 못했고 그런 그에게 백남준은 자신의 누이에게 임 작가의 거처를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편지 한 통과 모 저명 화랑주인에게 전하라며 다른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그 편지를 통해 작가가 해당 화랑에 작품을 팔 수 있었다는 일화로 막역했던 둘 사이를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백남준의 생전 모습을 담은 임영균의 사진전 ‘백남준, 지금 여기’가 25일까지 서울 신사동 이길이구갤러리(2GIL29 GALLERY)에서 열린다.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이 함께 무대에 오른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휘트니미술관, 1982)의 공연 모습부터 1996년 발병한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탓에 휠체어를 타고도 열정과 환희에 그득 찬 얼굴(구겐하임미술관, 2000) 등 임영균이 작가적 시선으로 바라본 백남준의 연대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특히 다가오는 10월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열릴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대가의 인간적이고도 소탈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임영균은 한국 현대사진의 1세대로, 시대를 명확하게 읽어내는 사진작가로 꼽힌다. 그는 피사체가 가진 힘을 면밀히 관찰해 통찰력을 담아 외형 너머의 정신성을 포착하는 데 몰두해왔다. 미국의 미술평론가 로버트 모르간은 작가의 사진에 대해 “한국인에게 낯선 백남준의 초창기 시절 활동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시대 백남준을 바라보는 미국과 유럽 관객들의 모습 또한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용 전달을 넘어 백남준 예술의 미적이고 인상적인 독창성의 요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생전 백남준은 작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예술사진이란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의 의도(意圖)이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서 한국의 기수 중 하나다.” 이번 출품작의 에디션은 10장 내외이며, 작품가는 400만 원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