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규선, 분청사기 기법으로 그려낸 풍경

입력 : 2019.05.09 13:23

‘행각’展, 26일까지 자하미술관

행각(行脚)은 흔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님’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규선의 행각은 어떤 행각일까. 작가가 이달 26일까지 서울 부암동 자하미술관에서 개인전 <행각>을 연다.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부터 경북 안동 갈선대, 청도, 강원도 설악산, 제주도와 대구 그리고 서울의 길거리에서 만난 풍경을 그린 회화가 내걸린다. 작가가 말하는 행각이란 손수 다리품을 팔아 전국을 누비며 눈으로 본 것을 화면에 담는 ‘화업행각(畵業行脚)’인 셈이다.
<행각-백천동> 116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자하미술관
<행각-백천동> 116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자하미술관
풍경의 장소, 모티브가 된 장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작가의 삶과 작품 그 자체로까지 확장된다.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이번 전시 서문에서 “차규선의 작품은 그의 삶처럼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다. 작가는 관객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전 그림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또 다른 그림세계를 그린다. 만약 그가 전작에 집착한다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만든 틀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자신의 틀을 해체시킨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이 흡사 산수화를 연상하지만 수묵이 아닌 아크릴로 그린 서양 회화다. 특히 붓이 아닌 나무막대로 그리는데, 작가의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차규선은 격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을 이어왔다. 이전에는 흙바탕에 유화물감으로 그리는 이른바 분청사기 기법을 응용해 매화를 그려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풍경’ 시리즈도 기존 기법과 유사하게 제작됐다. 분청사기 제작에 쓰이는 도자기 흙인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를 작품의 보존성을 고려해 고착 안료를 섞어 캔버스 표면에 바른다. 그리고 분청사기 표면을 분장하는 백토니(白土泥) 대신 주로 백색의 아크릴 물감을 큰 붓으로 표면 전체를 화장(덧칠)한 뒤, 아크릴 물감이 굳기 전 분청사기의 귀얄문이나 인화문, 덤벙 기법 등을 차용해 나무주걱과 나뭇가지 따위로 풍경을 완성한다. 
이러한 제작 과정이 분청사기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태토 위에 백색 아크릴 물감을 흩뿌리거나 덧칠한 아크릴 물감에 물을 뿌려 번짐 효과를 만드는 등 고유의 화법(畫法)을 정착했다. 차규선은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심지어 작품이 완성된 후 건조 과정에서도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마쳐도 긴장감이 이어진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거다.
<행각-선암사> 227x1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자하미술관
<행각-선암사> 227x18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자하미술관
차규선은 끊임없이 변모해오며 새로운 연작을 내놨다. 무채색의 풍경화를 그리던 작가는 컬러풀한 매화 그림을 그리더니 이번에는 묘한 분위기의 풍경을 담아냈다. 신작 선암사 매화와 청도 매화는 이전 시리즈와 달리 몽환적이다. 갈선대 풍경은 맑은 스카이블루로 표현되지만 우수에 찬 것 같고 설악산 풍경은 화려한 핑크빛이지만 왠지 모르게 시름에 잠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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