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2.04 18:19
‘싹이 노랗다’ ‘엎질러진 물’ ‘우물 안 개구리’…
익숙한 구절이 기하학적 문양으로 재해석돼
이슬기 ‘다마스스’展, 23일까지 갤러리현대

“다마스스, 다마스스….” 이슬기(46)는 이렇게 되뇐다. 그리고 떠올린다. 형형색색으로 이불을 장식하는 통영의 누비장들을, 말린 난쟁이 야자수 이파리를 엮는 멕시코의 바구니 장인들을.
이슬기가 개인전 ‘다마스스(DAMASESE)’에 여러 공예 장인과의 협업으로 완성한 신작을 내걸었다. ‘다마스스’는 언어의 원초적 움직임을 확장해 공예 장인의 바람을 담아 작가가 직접 만든 주술. 이번 전시에는 신화, 설화, 속담 등이 가진 상상력과 언어 체계를 시각적으로 응축한 누빔 이불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에게 이불이란 꿈과 현실의 구분선으로써, 그 이불을 덮고 자는 이의 꿈속으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매개체라고 믿는다. 이불 연작은 2014년부터 지속해온 ‘이불 프로젝트 U'의 일환으로, 우리 전통 속담을 오방색의 기하학적 형상으로 이불에 기워냈다. ’우물 안 개구리‘ ’싹이 노랗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등 익숙한 구절이 글이 아닌, 이불 문양으로 누벼진 것을 보면 그 기발함에 실소가 툭 터져 나온다.

프랑스 중부 지역 나무 체 공예가와 함께 작업한 ‘나무 체 프로젝트 O’,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 주민의 죽어가는 언어를 살리고자 시작된 ‘바구니 프로젝트 W’도 전시한다. 이외에도 전시관 1층 전 바닥을 은행잎으로 채운 ‘은행잎 프로젝트 B’가 눈길을 끈다. 노란 잎과 대비되는 보라색의 벽과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은행잎의 향이 관람객에게 시각적, 후각적으로 흥미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이슬기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물건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공간의 안과 밖을 동일하게 접근하며 한 사물이 특정 공간에서 어떻게 작품으로 작동되는지 탐구해왔다. 안과 밖이나 가로와 세로 등 고정된 두 개념의 경계를 허물며 일상 사물에 또 다른 뜻을 부여하고자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1992년부터 파리에서 거주하며 활동해온 이슬기는 특유의 해학적인 시선,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색의 힘을 통해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되돌려 놓는다. 동시에 이를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해 일반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지난해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와 함께 한정판 캐시미어 퀼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바 있다. 23일까지 갤러리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