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입력 : 2018.04.19 01:00

[연극 리뷰]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아내는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된 남편을 돌보느라 지쳐간다. 천문학자 준호 앞에는 10년 전 히말라야에서 잃은 연인 윤희가 환영처럼 자꾸 나타난다. 보험사 영업사원 진석은 사기 누명을 쓰고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다. 서울 골목길 어디서나 마주칠 것 같은,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저 먼 별에서 팔을 저어 날아왔다"는 노인(최불암)이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불러들인다.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배우 최불암 25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작이다. 관객 반응도 뜨거워 벌써 매진된 회차가 많다.

‘먼 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왔다’는 노인(최불암)은 서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별이 부서지고 있다. 이 별은 너무 아프다”고 말한다. /예술의전당
‘먼 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왔다’는 노인(최불암)은 서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별이 부서지고 있다. 이 별은 너무 아프다”고 말한다. /예술의전당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따뜻한 연극이다. 허름한 복장에 냄새 풀풀 나는 노인을,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거나 벌레 보듯 미워하거나 가끔은 고마워한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작고 어린 소년의 눈에 자신을 비춰봤던 사람들처럼. 바람이 분다고 별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바람에 부대끼며 흔들리는 것은 그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연극은 저 멀리 있는 별과 인간은 같은 원소로 구성돼 있고, 실은 우리 모두 다 먼 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한다.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이 언젠가 위로받으리라는 소망을 품게 한다.

'해무'(2011)를 함께 만든 안경모 연출과 김민정 작가 콤비 작품. 소극장의 한계를 입체적 조명과 음향, 배우들 연기의 앙상블로 영리하게 극복한 연출이 돋보인다. 조명이 사람과 사물의 일부만 강조해 비추거나 융단을 펼친 듯 넓게 극장을 채우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사라진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극적 긴장을 끌어올리는 음향이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다. 등고선 같던 계단뿐이던 무대는 극의 흐름을 따라 인적 드문 천문대가 됐다가 사람 붐비는 거리도 되고, 히말라야 산자락으로도 변한다.

다만 캐릭터와 상황을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상징으로 다루는 느낌이 강하다.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는 걸 표현하거나 설산 등반 사고를 무대 위에 재연하는 등 참신한 시도가 많지만,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할 빈틈도 그만큼 넓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최불암은 "관객 가슴마다 자기 안의 별을 가진 소중한 존재인 걸 생각하며 돌아가게 하는 연극이길 바란다"고 했다. 연극 마지막에 이르러 무대 위로 별이 쏟아질 때, 그의 위로는 분명히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공연은 5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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