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25년 만의 연극… 아름다움 찾아 무대로 왔다

입력 : 2018.04.12 01:44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주역,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는 최불암
"드라마는 삶을 그린 칠판 같은 것… 요즘은 어른다운 어른 되는 길 고민"

최불암(78)이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18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의 주역이다. '조씨고아'(2015) '해무'(2011)의 안경모 연출 작품. 최근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최불암은 "촬영 끝나면 다 잊어버리는 드라마만 하다 연극 하려니 두 배로 힘든 것 같다"며 웃었다. "고단해요. 목이 다 쉬고. 그래도 연기는 변함없이 해 왔으니까…." 엄살과 달리 그가 대사를 읊으면 연습실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저 먼 별에서 왔다'는 행색 허름한 노인이 돼 각자 아픔을 품고 바쁘게 사는 서울 젊은이들을 만난다. 시(詩) 같기도 동화 같기도 한 이야기에 세상, 사람, 시간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어린 왕자'가 서울에 노인으로 온 것 같은 연극이다. 최불암은 "이 작품의 별이라는 건 어떤 희망, 목적, 가치 같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결국 아름다움을 찾으러 온 거예요. 편안한 것, 코끝으로 다가오는 향기, 눈으로 보이는 무언가 같은 것들. 미(美)는 예술을 통해 나오는 것이고, 나는 그걸 찾고 보이기 위해 평생 연기를 한 걸 테니 딱 맞춤한 작품이지."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서울 명동 주점 ‘은성(銀星)’엔 박인환, 변영로, 이봉구, 천상병, 전경린 등 당대의 문사(文士)와 예인(藝人)들이 북적였다. 최불암은 “그러고 보니 은성도 별, 이번 연극도 별 얘기, 내 직업도 별(star)”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서울 명동 주점 ‘은성(銀星)’엔 박인환, 변영로, 이봉구, 천상병, 전경린 등 당대의 문사(文士)와 예인(藝人)들이 북적였다. 최불암은 “그러고 보니 은성도 별, 이번 연극도 별 얘기, 내 직업도 별(star)”이라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최불암은 "드라마는 삶을 그린 칠판 같아야 하는데, 요즘 드라마는 해선 안 될 사랑, 부모 자식의 억지 다툼 같은 갈등을 그려낸다"고 염려했다. "그게 진짜 요즘 삶이에요? 드라마 '전원일기'가 장수한 건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워서였어요. 평화로웠거든. 요즘도 시골 노인들은 '이제 당신 나오는 드라마 안 하오?' 하고 물어요." '전원일기'는 그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회 일을 맡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극 중 최불암이 버려진 아이 금동이를 입양한 내용 뒤 전국에서 칭찬이 쏟아졌던 것. 극 중 인물과 배우 개인을 잘 구분 못하던 시절이었다. "방송국 편지 배낭이 온통 내 칭찬이에요. 당직자가 '당신 칭찬 전화 받느라 한숨도 못 잤다'고 불평을 해요. 우리 국민이 그렇게 착한 국민이에요." 최불암은 그때부터 이 착한 심성의 국민에게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했다. '그냥 가짜로만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 맡은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이 올해 36년째다.

그가 최근 촬영차 간 전북 무주에서 본 '학교 가는 길'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 학교 다니라고 주민들이 합심해 곡괭이로 산을 파고 바위를 쪼아 길을 냈어. 그게 참 가슴에 멍이 들도록 아프더라고. 예전엔 어른들이 저렇게 아이들 길을 내줬는데…. 그런 길이 충청도에도 경상도에도, 전국에 있어요." 최불암은 "다음 세대가 어떤 세상을 만나 살 것인가 걱정해야 한다. 그 길을 닦고 내주는 것이 어른 역할 아니냐"고 했다.

극 중 긴 시간을 건너 재회하는 ‘윤희’(박혜영·왼쪽)와 ‘노인’(최불암). /예술의전당
이번 연극 개막은 4·19 기념일 하루 전인 18일. 그는 "4월이면 몸도 마음도 몸살이 난다"고도 했다. 1960년 4·19 직전인 3월 12일 서울대 정일성, 고려대 독고중훈, 중앙대 박근형 등 대학 연극부 동료들과 밤새워 부정선거 규탄 전단을 만들고, 체포를 피해 지방으로 도망 다녔던 기억 때문이다. "배우가 광대잖아요. 난 '廣大'로 읽어요. 넓을 광에 큰 대. 지금으로 말하면 매스미디어지. 좋은 연극은 많은 사람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연극하는 청년들이 그런 의무감을 느꼈던 거예요."

요즘 최불암은 1주일에 2~3일은 TV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위해 지방을 다니고, 나머지는 연극 연습을 한다. 집에선 "빨래 널고 냄비 닦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아내(배우 김민자)가 손목이 아프대요. 평생 집안일을 했으니 안 아플 리가 있나. 그래서 요즘은 빨래도 널어주고, 냄비도 닦아요. 아 참, 연극 연습 때문에 술도 많이 줄였어. 어제도 소주 한 병 반밖에 안 먹었다니까!" 팔순을 앞두고도 그는 여전히 현역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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